"101세에도 맨눈으로 쭉정이 가려내"

입력 2009-11-30 09:54:03

1908년생 예천 이외순 할머니

예천 감천면 대맥리에 사는 이외순 할머니(101)가 아들 내외와 함께 집 앞 비닐하우스에서 종자 콩을 고르고 있다.
예천 감천면 대맥리에 사는 이외순 할머니(101)가 아들 내외와 함께 집 앞 비닐하우스에서 종자 콩을 고르고 있다.

"한국 노인들의 장수 비결에는 따뜻한 가족애가 있었다."

세계적 노화 연구가로 알려진 미국 조지아대 레너드 푼 교수는 올 6월 미국 NBC 방송팀과 함께 전라북도 순창을 찾았다 한국 가족 부양 시스템에 깊이 감동했다. 그는 "100세를 넘긴 한국 노인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 아들, 며느리의 따뜻한 가족애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 감천면 대맥리 이외순 할머니(101세)의 장수 비결 역시 '가족'에 있는 듯했다. 지지난해 백수(白壽·99세)를 넘긴 할머니는 집안에서 상할머님이라 불리는 최고 웃어른. 1908년 일제시대 영주 풍기에서 태어난 어르신은 아들 권오순(75), 며느리 김성마(74) 부부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며느리 김씨는 56년간 시어머니를 봉양했다. 열여덟에 시집 와 지금까지 한결같다. "힘드셨겠다"고 여쭈었더니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것이지…." 덕분에 할머니는 한평생 병원 가는 일 한번 없이 건강하게 지내셨다.

25일 할머니를 만난 곳은 집 앞마당 빈터에 철골 뼈대를 세워 만든 비닐하우스. 아들 내외와 함께 콩나물 종자로 쓸 검은 콩에서 쭉정이를 골라내던 할머니는 낯선 취재진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유난히 새하얀 할머니의 흰머리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지만 한눈에 봐도 정정한 모습이다. 며느리는 돋보기를 썼는데, 할머니는 맨눈으로 콩을 고르고 있다.

"손수 바늘귀까지 끼실 정도예요." 며느리 김씨는 "눈은 참 좋으신데 가는 귀가 좀 드셨다"며 "연속극을 좋아하는 할머니 때문에 마당까지 TV 소리가 울리기 일쑤"라고 웃었다.

아들 내외는 할머니에게 특별한 장수 비결은 없다고 했다. 약이나 건강식품은 전혀 드시지 않고 있단다. 단지 할머니는 늘 부지런히 움직인다. 아들 내외가 농사를 짓느라 들에 나간 사이 부엌과 비닐하우스를 쉴 새 없이 오간다. 무엇이라도 늘 손에 만지작거려야 성이 풀리신다.

할머니는 아직까지 왕성한 식욕을 자랑한다. 가리는 것 없이 세 끼니마다 밥 한 공기를 꼬박 드신다. 배고플 때마다 간식거리도 챙겨 드신다. 고기보다 채소나 장류를 훨씬 좋아하신다.

할머니의 수면 시간은 하루 8시간 이상. TV를 보다 잠 오면 자고, 다음날 오전 7~8시 사이 일어난다. 25일에는 오전 7시에 일어나 30분 뒤에 된장국과 채소 무침의 아침상을 받고, 오전·오후 내내 콩을 골랐다.

아들 내외는 "어머니가 푹 자고 가리는 것 없이 밥 잘 드시는 게 건강 비결인 것 같다"며 "100세까지 매일 동네 경로당에 나가실 만큼 사교성이 넘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장수 노인을 봉양하는 가족에겐 말 못할 아픔도 있다. 장수라는 천복을 누리고 있는 이 할머니 역시 가슴 속 깊이 묻어 둔 회한이 있다. 아들 내외는 "9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7남매를 둔 어머니는 벌써 7명의 동생과 사위 1명을 여의었다"며 "어머니 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글·사진=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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