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한 공직자 모임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애초 그쪽에서 부탁한 내용은 '공직자의 기강 확립과 청렴성 제고'쯤 되는 제목으로 강연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물어서 강사를 구한 모양인데, 내가 그 제목의 강연자로 어떤 면이 어울렸는지 모르겠지만 연단에 섰다. 의례적으로 공직자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말하기보다는 아예 발상을 달리해서 어떻게 하면 공직자들이 공무에 충실하면서 국민을 섬기고 보다 청렴하게 살 수 있을까, 일종의 국민정신운동에 대해 고민했다. 결론을 내려 이태 전에 작고한 한 현자(賢者)의 삶을 이들에게 소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분은 1937년 일본 도쿄의 한 빈민촌에서 재일 조선인 청소부의 7남매 중 여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청소부로 일하러 나가고,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형과 누이들도 모두 공장에 나가고 나면 소년은 아버지가 주워온 쓰레기 더미 속의 동화책을 읽으며 스스로 글자를 깨우쳤다.
1945년 귀국 거지로 불리는 일군의 귀향민들 속에 섞여 해방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가난 때문에 부모형제가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자리를 잡게 된다. 초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원했지만 소작인이었던 아버지의 경제는 그의 작은 바람을 좌절시켰다. 그래서 안동 시내에 있는 한 쌀가게에 점원으로 취직을 한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그에게 쌀을 달아줄 때 됫박 바닥에 조금씩 쌀을 남기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고구마의 무게를 달 때 슬쩍 고구마를 한두 개 흘리는 수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남기라고 가르쳤지만, 어린 양심은 차마 그 일을 못해 결국 쫓겨난다.
이어 부산에서 재봉틀 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당시 창궐하던 결핵이 찾아와 18세라는 젊은 그의 몸을 망가뜨려 일흔 살로 세상을 뜰 때까지 그를 병마로 괴롭힌다.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가 보통 농부들이 여름에 풀 짐을 한 짐 가득 등에 진 정도라니 그 고통이 오죽했을까?(풀 한 짐의 무게는 55㎏에서 65㎏ 정도다) 마산 국립요양원에서 나와 거지처럼 떠돌다 고향에 돌아와 시골교회 헛간 같은 아래채에 의탁하면서 새벽마다 교회 새벽종을 치는 소임을 자청한다. 특히 겨울 새벽종을 치기 위해 문 밖으로 나오면 외풍 세던 허술한 방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추위가 병든 그의 몸을 엄습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같은 동네 곱사 장로가 그를 위해 읍내에 나가 목장갑 한 켤레를 사서 선물하면서 새벽종을 칠 때 장갑을 끼고 칠 것을 권한다.
그러나 고지식한 종지기는 한 번도 그 장갑을 손에 끼지 않았다. 장갑 낀 따뜻한 손으로 새벽 서리가 앉은 줄을 잡고 종을 치면 종소리가 멀리 울려 퍼질 것 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병든 이, 가난한 이, 풀벌레와 길가의 돌멩이와 같이 힘없고 소외된 것들에게까지 그 희망의 새벽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지 않다는 작은 믿음 때문이었다. 대신 맨손으로 종을 치고 교회 마당을 가로질러 방으로 돌아갈 때 서편에 걸린 달빛에 반사된 마당의 서리가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광경을 오랫동안 감상했다. 그리고 길가에 버려진 개똥보다 못한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첫 동화를 썼다. 그 작품이 세계적인 명작이 된 '강아지 똥'이었다. 바로 그 유명한 동화 작가 권정생의 이야기다. 이후 그는 수백 편의 동화를 쓰고 연 1억 원에 이르는 인세를 받는 국민적인 동화 작가가 되지만 평생 구두 한 번 사 신지 않고 낡은 옷 한 벌로 댓 평짜리 오두막에서 혼자 살다가 10억 원이 넘는 유산을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쓰라는 유언을 남기고 작고한다. 물론 살아있을 때 문학상과 같은 세속적인 영예는 철저하게 거절했다.
현대인들에게 절제와 가난한 삶의 미덕을 깨우치고, 스스로는 '자발적인 극빈'을 살다가 간 이 현자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직자의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법원의 영장 없이도 공직자의 계좌를 추적하는 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처방은 계좌추적법안이 아니라 책을 읽고 양심의 청렴지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공직자들에게 주 단위로 독서를 강권하는 '독서법안'의 발의가 아닐까? 그가 비록 의심받는 공직자라고 하더라도 독서인의 양심이 차마 부패를 일상화하지는 못할 테니까.
시인'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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