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입춤' 정형화…널리 알리고 싶어요"
정경희(49'대구국악협회 무용분과 위원장) 무용예술원 원장에게 춤은 생활이다. 한국전통무용가인 어머니 윤옥희(75)씨의 뒤를 이어 전통춤의 맥을 잇고 있는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춤을 접하며 자랐다. 그래서 오랫동안 한길을 가다보면 한번쯤 만나게 되는 슬럼프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춤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눈만 뜨면 접하는 것이 춤이었지만 정 원장은 춤꾼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춤을 업으로 삼을 것인지는 배우자를 만난 뒤 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늘 춤 속에서 생활했지만 춤을 통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남편도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춤꾼 인생을 사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춤꾼이 되겠다고 결심한 뒤 정 원장이 가장 먼저 배운 춤은 도살풀이춤이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강남기 선생으로부터 10년 넘게 사사했다. 도살풀이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에서 유래됐지만 가락과 기교는 조금 다르다. 눈에 드러나는 차이점은 춤출 때 사용하는 수건의 길이다. 살풀이춤에 사용되는 수건은 길이가 짧은 반면 도살풀이춤에서 이용되는 수건은 길이는 2m가 넘는다. 수건을 힘차게 뿌리고 이러저리 자유롭게 휘두르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팔힘이 약한 여성의 경우 체력적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 도살풀이춤이 남성적인 춤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요즘에는 예쁘고 깔끔하게 추는 춤이 대세입니다. 하지만 저는 예쁘게 추는 춤에는 흥미가 없었습니다. 제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몰라도 제 체구를 능가하는 힘있는 춤을 추고 싶어서 도살풀이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배우는데 어려움은 많았지만 즐거워서 힘든 줄은 몰랐습니다."
배움에 대한 정 원장은 열정은 대단하다. 전국을 다니며 한영숙류 태평무, 진세춤, 호적시나위, 화선무, 진주교방굿거리 등 여러 가지 춤을 두루 섭렵했다. 지금도 공부는 계속하고 있다. "한가지 춤만 고집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요. 자꾸 자극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는 평생해야 할 일입니다." 그녀는 배움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부단한 노력은 결국 결실로 이어지는 법. 정 원장은 최근 큰 상을 받았다. 제14회 한밭국악전국대회에서 대통령상인 명무대상을 차지한 것. 특히 춤꾼들 사이에서 높게 평가받지 못하는 입춤으로 장원을 차지했기 때문에 더욱 값지다. 정 원장이 선보인 입춤은 한국전통춤의 기본이 되는 춤이다. 발디딤, 손놀림 등 입춤의 구성 요소는 전통춤에 입문하고자 하는 춤꾼이라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교다.
하지만 그 가치는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춤은 크게 국가 또는 시도에서 지정한 춤과 지정을 받지 못한 춤(비지정)으로 나뉘어진다. 대표적인 국가지정무형문화재에는 승무, 처용무, 태평무, 시도지정무형문화재에는 날뫼북춤, 한량무, 진도교방굿거리춤 등이 있다. 입춤은 춤꾼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법과 형식을 고루 갖추고 있지만 비지정으로 분류돼 있다.
경연대회에서 비지정 전통춤이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드물다. 국가나 시도에서 인정한 춤을 더 높이 평가해주는 전통 때문이다. 정 원장은 이번 대회에서 이런 전통을 깼다. 이를 두고 비메이커제품이 메이커제품을 제치고 품질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것에 비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입춤이 참 많다. 가르치는 선생마다 자신의 기교를 조금씩 더한 까닭에 입춤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정 원장의 입춤도 마찬가지. 도살풀이춤의 기교가 가미되어 독특하고 새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이 점이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춤꾼에게 명무(名舞)라는 타이틀은 최고 호칭이다. 명무 반열에 올라서면 학력에 관계없이 전국 대학에 출강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만큼 권위가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많은 국악경연대회 가운데 명무라는 타이틀이 주어지는 대회는 단 두개 뿐이다. 한밭국악전국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거나 전주대사습놀이에서 무용부문 1위를 차지하는 방법밖에 없다.
정 원장은 명무라는 칭호를 얻은 뒤 입춤에 '대구입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구입춤'은 현재진행형이다. 하나의 완성된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보완해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지금까지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인생에서 하나의 숙제를 마친 지금, 제2의 춤꾼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제 자신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남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대구입춤을 정형화해 널리 알리고 사회 봉사활동도 하고 싶습니다." 국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인간문화재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춤을 알리고 싶어하는 그녀는 진정 춤을 사랑하는 진정한 춤꾼이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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