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그 변화는 삶의 근본적인 부분을 바꿔 놓을 정도로 광범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커다란 변화를 겪는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처음 농사를 짓게 되었을 때나 기계와 동력의 발명으로 산업을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수준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변화를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세계의 거의 대부분 지역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하나의 통일된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형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구의 이동 또한 전지구적 차원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컴퓨터와 네트워크로부터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우리의 물리적 세계는 언제부터인지 네트워크의 효과로 발생한 가상세계와 겹쳐지게 되었다.
처음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에만 해도, 우리의 삶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스 시절 화면에서 깜박거리는 커서를 보면서, 무언가 입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을 느껴본 세대들이라면, 이러한 변화가 정말 그동안 자기가 겪은 삶의 한 부분이었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장황하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까닭은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삶에 지나치게 빠른 속도를 부여하고 있는 것 아닌지, 그 속도는 과연 받아들여야 할 필연의 상황인지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요즘 시대의 속도는 KTX의 최고 속도 갱신에서보다 인터넷의 검색어 순위에서 더 절감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한쪽에서 그 무엇보다 강하게 시선을 잡아끄는'뜨는 검색어 순위'야 말로 우리 시대의 속도와 우리의 관계 속에서 그 속도 차지하는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준다. 텔레비전을 보는 순간에도 라디오를 듣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한다. 텔레비전에 오르내리는 이름들을 검색하고 그들의 화젯거리에 대해 조사한다. 선거방송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모양으로 검색어의 실시간 순위가 오르락내리락거린다. 손석희의 '100분 토론' 마지막 방송이 나갈 즈음에는 관련 검색어가 순위에 오르고, 방송이 끝나 하루가 지난 지금에도 그 여파는 남아 있다. 방송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특히 대부분의 생방송이 중심인 라디오에 있어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읽기도 어렵고 그 의미도 대중적이지 않은 시청률보다 쉽고 영향력도 있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오히려 중요한 기준이 될지 모른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네트워크에 관련된 그야말로 사소하고 작은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대중적 관심의 쏠림을 보여주는 가장 빠르고 가장 믿을만한 잣대가 되고 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한편으로 현상에 대한 간극 없는 반응의 결과이며, 그 결과 또한 간극 없는 집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은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실시간'이라는 속성은 일종의 주술적 효과를 발휘하는 듯하다. 세상의 흐름 속에 내가 있고, 이 흐름에 자신을 두고자 한다면, 적어도 순위의 맨 윗자리에 있는 단어만이라도 클릭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실시간 검색어는 마우스 클릭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서 엎치락뒤치락 자리바꿈 놀이를 한다.
하지만 '실시간'의 효과란 대개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쓸데없다. 연예인의 이름을 클릭해서 그 명성을 높여주는 일이나, 특정한 뉴스 기사의 키워드를 클릭해서 기자들에게 낚이는 일이나, 생각해보면 위너는 늘 딴 곳에 있다. 정보통신기술이 속도의 강박을 만들어내었고, 실시간 검색어는 이러한 강박을 접속의 욕망에 결합하여 교묘한 마케팅 도구를 생성한다. 하지만 실시간이란 '간극 없음'으로 곧 '생각 없음'에 연결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실시간이란 극대화된 속도의 효과지만 그것은 성찰과 반성을 빼앗고 삶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그 삶을 추방할 수도 있다. 세상이 가속도를 높여갈수록 '느림'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이 게으르게 산다는 말일 수 없듯이 분주하게 산다는 것이 성실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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