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로 구두수선 외길 40년 정정식씨

입력 2009-11-19 09:47:08

"내 고객은 전국구, 서울 부산 단골도"

40년간 동성로에서 구두 수선일을 하고 있는 정정식씨가 부산에서 찾아온 한 여성 고객의 구두를 고쳐주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40년간 동성로에서 구두 수선일을 하고 있는 정정식씨가 부산에서 찾아온 한 여성 고객의 구두를 고쳐주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옆 막다른 골목. 3.3㎡ 남짓한 구두 수선집에는 정정식(63)씨가 구두와 씨름하고 있다. 못을 박고, 고무를 자르고, 창을 갈고, 광택을 내고, 어느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둔탁한 쇳소리가 빌딩벽에 부딪친다. 밑창에 덧댈 고무를 자를때는 어금니를 질끈 문다. 수선을 제대로 하려면 한겨울에도 장갑은 거추장스럽다.

"내 식구꺼다 생각하고 일하는 거지. 별다른 재주가 있간디." 꼼꼼한 수선 솜씨는 금세 입소문을 탔다. 서울, 부산, 광주, 울산에서까지 손님이 찾아온다. 미국에 이민간 한 고객은 국제 택배로 수선을 맡겨 올 정도. 수선비도 전문 수선집에 비해 40% 이상 싸다. 훈훈한 인심까지 보태지면 가격은 더 내려간다. 이날 부산에서 구두 수선을 하기 위해 대구를 찾았다는 박성애(34·여)씨는 "가격도 저렴하고 아저씨가 구두를 잘 고친다는 얘기를 듣고 볼일도 볼 겸 구두를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옛 금릉군(김천시) 대덕면에서 태어난 정씨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고향을 등졌다.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서 무작정 대구를 찾았다. "어릴 땐 굶기를 밥먹 듯했어. 큰 도시로 오면 배는 곯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일자리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고향에서 극장일을 하다 익힌 구두일을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극장에 있는 높으신 분들 구두를 닦아주며 구두 수선일을 어깨너머로 배웠어. 그때 잡은 구두가 40년 밥벌이가 될 줄이야."

인생 8할을 동성로에서 보냈다. 골 깊은 주름에는 노상에서 40년간 견딘 여름 뙤약볕과 겨울 칼바람이 스며있다. 손님이 건네는 인사도 늘 길 인사다. 5개월 전 동성로 공공디자인 개선 사업으로 자리를 옮기고 부턴 인사말이 바뀌었다. "아저씨 여기 계셨네예. 안 추운겨." 눈에 띄지 않는 자리. 손님이 80% 줄었다. "다 내 운명이지. 누굴 원망하지 않아. 좋은 날이 또 오겠지."

곰. 우직하고 정직한 성품에 빗대 단골 손님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평생 남에게 신세 지길 싫어한다. 하루 3천번 이상 줄넘기를 하며 건강 관리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위에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신세를 지면 쓰나? 제 맡은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게 애국하는 길이야."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라며 '무식하다, 못배웠다'는 말을 연방 내뱉지만 인생 철학은 확고하다.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알면 누구나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어." 두 아들도 정씨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큰아들(35)은 해군 대위로 예편해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막내도 임시직 아르바이트생에서 유명 철강 회사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성실하다. "대학까지 나온 애들이 남한테 해를 안 끼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나라에도 보탬이 돼야지."

한해 수 천 켤레 구두를 만지지만 정작 본인이 구두를 신어본 적은 별로 없다. 둘째 아들 결혼식 때 빼고는 늘 운동화 차림이다. "큰애 때 구두 신을 일이 한번 더 남았어."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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