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의 대학과 책]주역의 발견(문용직 지음 (부키, 2007))

입력 2009-11-18 07:44:15

급할수록 돌아가는 여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습니다. 사람으로서 할 바를 다하면 그 다음 문제는 하늘이 결정할 문제라는 의미입니다. 결과에 너무 집착하거나 승부에 매달리지 말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수험생과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다들 노심초사 불안한 마음에 자녀입학을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한다는 심정이실 겁니다.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팔공산에 오르는 분도 있고, 교회를 찾아 철야기도로 밤을 지새우는 분도 있습니다. 하늘도 감동할 지극 정성입니다. 될 수만 있다면 모든 수험생들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 후 원하는 직장을 얻고, 즐겁게 일하며 일생을 보내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성을 다한다고 해도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노력하는 삶조차도 재촉하는 그 존재감, 바로 불안감 때문에 사람들은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습니다. 점(占)은 모든 인류 역사에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깃발이 바람에 휩쓸려 부러지거나 새가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 앞일을 예측하던 제갈량 이야기나 초월적인 신의 계시를 받아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 인류를 구했다는 이야기, 따지고 보면 모두 점술사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비논리적인 사고나 행동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어쨌든 노아의 방주는 성공했고, 인류는 멸망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이것은 정치학 박사 문용직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주역의 발견-상수와 의리가 무너진 주역의 본질』(부키, 2007)에서 이러한 점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내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일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만약 작은 일이라면 신경을 꺼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의 장래가 좌우되는 입시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미래를 예측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단순하게는 종이 위에 합격, 불합격을 표시해 놓고 사다리타기 놀이를 한다든가, 동전 던지기를 시도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예측 방식은 우연에 근거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점입니다. 또 하나의 형식은 인간의 예지력을 믿는 경우입니다. 무당과 같이 예지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묻거나 자기 자신에게 묻는 점의 방법입니다. 또 다른 형식의 점은 어떤 기대치를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즉 점성술이나 사주, 카드점, 관상 등에 의존해서 예측하는 것입니다. 주역은 바로 마지막 부분에 속하는 점의 방식을 설명한 책입니다. 확률에 의존하는 일종의 과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날의 과학자는 고대의 무당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만약 과학을 패턴을 찾아내는 방식을 구하는 문화라고 규정한다면 고대의 예언자나 무당은 바로 오늘날의 과학자라는 것입니다.

저자 문용직 박사는 점을 "그 인과관계가 있든 없든 또는 인(因)과 과(果)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이루어졌던 간에 관계없이 미래의 사건 y와 현재의 사건 x를 연결하는 함수 f가 존재하며, 그 f를 발견해서 활용하는 형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정신분석학자 칼 융(C. G. Jung)의 공시성(synchronicity)의 개념을 원용하여 비인과적인 관계의 필연적인 존재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조물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애정을 가진 신은 하늘을 시작으로 인간을 끝으로… 축소된 우주로서의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을 인용하여 인간 존재의 핵심 개념을 정리했습니다. "가장 뒤에 만들고 가장 작은 존재인 인간에게 성좌와 같은 저 자연 전체를 반영하도록 하라." 결국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그 자체가 우주라는 결론입니다. 조급하고 불안한 지금, 차분히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이 살아 온 길과 한 일을 돌이켜보고, 자신의 앞날을 믿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경북대학교 총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