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락의 시사코멘트] 수능, 학벌, 열린 사회의 적들

입력 2009-11-14 16:26:51

2010년도 수능시험이 그저께 치러졌다. 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일단 한시름 놓게 되었다. 그러나 곧 이어질 대학입학시험에 맞닥뜨리게 되는 수험생들의 마음이 계속 편할 리는 없다. 사실 입시경쟁에 휘둘려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인생의 선배로서 참 할 말이 없다. 선배 세대로서 자기 세대에 이런 고통을 겪고도 전혀 개선하지 못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경쟁이 전무한 사회는 있기 어렵다. 어떤 사회든 나름의 경쟁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경쟁의 결과가 지나치게 큰 편차로 존재하는 사회는 비문화적이고 야만적인 사회이다. 승자 독식의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는 앞으로도 어린 영혼들이 우울하고 슬픈 청춘을 보내야 할 게 틀림없다.

철저하게 서열화된 한국의 대학, 대학 졸업장이 개인에게는 평생의 계급이 되는 숨 막힐 듯 냉혹한 '학벌 사회'의 현실 앞에서 어린 영혼들의 시련은 계속 이어질 게 뻔하다. 패자부활전이 허용되는 사회, 대학 입시에서 한 번 실패했더라도 다시 기운을 차려 도전하면 새로운 기회와 성취가 가능한 '열린 사회'는 불가능한 꿈인가?

대학 진학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지만, 어렵게 졸업했다고 하더라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88만 원 세대'라는 저임금과 비정규직이 기다리고, 프리터(freeter-프리랜서아르바이터)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며, NEET(Not I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취직, 취학, 취업훈련을 받지 않고 사회참가에 소외된 사람)가 되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게 이들의 가까운 미래이다.

이런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대안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게 핀란드의 학교교육이다. 핀란드는 적은 시간을 투입하고도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PISA라는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핀란드는 수년간 연이어 1등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적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도 1위를 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사회적인 신분보다 자기 적성과 흥미에 따라 대학을 진학하고 진로를 결정한다고 한다. 시험에 등수가 없고 성적표도 없다고 한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차별화나 배제보다는 융합과 우애를 강조하는 창의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이런 교육현실 뒤에는 차별이 극소화된 사회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의사나 판검사, 청소부나 농부의 임금에 실질적인 차이가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대학에 진학할 필요도 없고,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결국은 한 사회의 교육문제는 그 사회의 정치경제적인 문제와 연동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대입 수능날 신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2000년 이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큼직하게 실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올해 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255만 원으로 지난해 250만 원에 견주어 2% 오른 반면 비정규직 임금은 지난해 125만 원에서 올해 120만 원으로 3.4% 줄었다. 따라서 올해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47.2%에 그쳐, 지난해 49.9%보다 2.7% 포인트 떨어졌다고 한다. 정규직 임금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2001년 52.6%, 2003년 51.0%, 2005년 50.9% 등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매우 열악해 올해 8월 기준 남성 정규직 시간당 평균 임금을 100이라고 할 때, 남성 비정규직은 49.4, 여성 비정규직은 39를 기록했다. 아울러 올해 법정 최저임금인 시간당 4천 원을 받지 못한 사람도 210만 명으로 파악됐다. 2001년 59만 명이었던 최저임금 미달자가 2008년도 175만 명에 이어 2009년 올해 210만 명을 기록한 것이다.

이런 현실을 앞에 두고 교육문제만 핀셋으로 끄집어내어 처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문제를 외면할 수도 없는 이 딜레마를 언제까지 두고 보아야만 할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고교 교사를 하는 후배가 교육 산문집을 보내왔는데 책 제목이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이계삼, 녹색평론사)이었다. 정녕 우리 사회는 영혼이 없는 사회인가?

시인'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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