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은 건강 문제를 제쳐 놓더라도 젊음과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현대에서는 발 붙일 자리가 없다. 그렇게 미움 덩어리인 비만이 인간 세계에서 밀려나지 않고 속을 썩이는 것은 식욕 때문이다.
음식, 특히 맛있는 요리를 먹는 즐거움은 대단하다. 사람들은 비만을 겁내면서도 식탐을 어쩌지 못한다. 음식물 앞에서 나약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뱀은 자기 몸통보다 큰 먹이를 죽을 힘을 다해 삼키고 나선 몇 달간 음식을 구경조차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사자한테 쫓기다가 잡아먹히는 사슴이나 소가 우리 눈에는 불쌍하게 보이지만 사자의 입장에서는 걸음이 빨라 쉽게 잡히지 않는 먹이 때문에 애가 탄다. 사냥이 실패해서 쫄쫄 굶어야 할 때가 비일비재한 것은 백수의 왕이나 덩치가 작은 초식동물이나 매한가지이다.
인간이 배불리 먹게 된 것은 농업혁명이 일어난 약 1만년 전으로, 인류사 전체를 따지고 볼 때는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전에는 우리의 조상도 사바나에서 먹이를 찾아 쫓고 쫓기는 야생동물일 따름이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환경에서는 언제 먹이를 얻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므로 있을 때 충분히 먹어 두어야 없을 때 견딜 수 있었다. 진화과정에서는 당연히 이러한 사람들이 자연선택을 받는다. 먹이를 충분히 얻을 수 있게 된 때부터는 식사 습관이 규칙적으로 되고, 한꺼번에 많이 취하는 것보다는 조금씩(한 번에 한 그릇) 자주(하루 세끼) 먹음으로써 소화기관의 부담을 줄이고 몸도 가볍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먹이를 한꺼번에 많이 먹을 필요가 없어졌지만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과식을 선호하게 된 유전자들을 없애는 데는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비만을 치료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또 과거 미국의 애리조나주와 멕시코의 소노라에 걸친 척박한 사막에서 굶주리던 피마 인디언에서 요사이 비만이 많은 이유이다.
항정신병 약물을 복용하는 일부 환자들은 식욕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런 약물은 대뇌에서 정신병 증상을 없애는 동시에 시상하부에 있는 포만 중추를 억제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포식을 해도 배부름을 느끼지 못한다. 공복이 최고의 식욕이고 배가 부르면 음식을 멀리하는 것은 위장에서 생산되는 그렐린이라는 물질 때문이고, 지방세포에서 생산되는 렙틴이란 물질은 체내에 지방의 비축을 알려준다. 몸이 마르면 음식이 당기고 몸이 불면 음식을 덜 먹게 되는 것은 이 물질 때문이다. 과식과 비만을 개인의 의지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박종한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과 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