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잘 만나야 상팔자? "개도 마찬가지"
'이 개는 개(dog)가 아니고 우리 가족 구성원입니다.'
개는 사람을 따르고 좋아하는 동물 중 으뜸이다. 주인 역시 그 개를 잘 돌봐주고 아껴주면 자연스레 한가족이 될 수 있다. 그 주인은 단 한순간도 개를 '넌 그냥 동물이야'라고 생각지 않는다.
실제 가족 구성원이 된 개들은 '난 사람이야, 가족의 일원이니 당당히 권리를 행사해야지'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식사할 때도 같이 하고 외식하러 나간 고깃집에서도 한 사람분의 대접을 받는다. 잘 때도 마찬가지다. 누구 하나 집안에 늦게 들어오면 잠을 자지 않는다.
집집마다 개를 키우는 유형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모두 이럴 수는 없다. 하지만 펫(Pet·애완동물)들이 현대인들에게 큰 위안으로 다가오고 또 그 중에 개를 그 주인이나 가족과 각별한 관계를 갖고있는 경우가 적잖았다.
개 역시 10년을 그 가족과 지내다 보면 '내가 개인지 사람인지' 헷갈릴 만도 하다. 자신의 육체적 정체성을 잊고 사는 두 펫, '봄'과 '하나'를 통해 이들의 독특한 생활과 특이한 정신세계로 들어가보자.(관계기사 6면)
◆16년간 함께 산 '봄'
발바리종인 '봄'이는 봄에 태어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눈뜨자마자 원래 주인의 친구인 김용구(63·대구시 달서구 성당동)씨의 선택을 받고, 대구로 와 16년 동안 이 가족과 함께 동고동락했다. 16년 동안 김씨 집안의 힘겨웠던 시절의 모든 일을 지켜봤고, 실제 이 가족이 행복해지는데 '봄'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사실 평균적으로 개가 이렇게 행복하게 16년 살았으면 지금 죽어도 호상(好喪)이란다. 하지만 '봄'은 사람으로 따지면 80~90살의 건강한 노인이다. 100살도 끄떡없어 보였다. 이빨 하나도 빠지지 않고 튼튼하다.
취재를 위해 주인 가족과 함께 3시간여 동안 행동을 관찰한 결과로는 봄이는 개라는 생각을 잊고 사람처럼 행동하는 게 분명했다. 말만 하지 못할 뿐 가족구성원 중 상전이었다. 김씨 가족의 이메일 아이디는 모두 '봄'의 이름을 딴 'bomy'이며, 컴퓨터 바탕화면도 '봄'의 사진이 떡하니 장식하고 있다. 휴대폰 바탕화면도 10년 가까이 '봄'이가 주인공이었으나 최근 손자가 태어나면서 그 자리를 넘겨줬다.
김씨는 실제 '봄'을 돌아가신 선친(先親)이 혹시 이 개를 통해 우리 가정을 돌보기 위해 보낸 게 아닐까 생각까지 했다. 중풍과 신경마비로 움직이기조차 힘든 상태에서 '봄'이 집에 들어온 후 김씨와 함께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다니면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업이 기울어 힘들었을 때도 가족들 간 싸우지 않도록 하는데도 '봄'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한다.
장녀인 김은정(35·대구예술대 성악·뮤지컬과 교수)씨는 "사위들도 '봄'이 통과 신호를 줘야 집안에 들어올 수 있다"면서 "실제 남편 하성목(37·회사원)씨도 봄이에게 고기도 사주고 공을 많이 들였다"고 털어놨다. 아들 김인원(26·대학생) 씨도 "우리 가족의 보배이자 자랑"이라며 "한 번도 집안에서 대·소변을 본 일도 없다"고 칭찬했다.
이렇게 사랑받은 '봄'이지만 한때 위기도 있었다. 10년 전에 고환암을 앓아 고환 절제수술을 받기도 했고, 그 이듬해에는 기관지성 폐렴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버려졌다 새 삶을 살고 있는 '하나'
이재식(59·대구시 서구 비산동)씨의 집에는 '하나'란 요크셔테리어종의 개가 9년째 살고 있다. '하나'는 9년 전 동네 골목 어귀에 묶여 버려진 유기견이다. 하지만 이를 불쌍히 여긴 이씨의 아내 백월분(58)씨가 집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하나'는 스스로 먹지도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상태로 사료를 으깨 먹여줘야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사료를 먹여줘야 먹는다.
'하나' 역시 앞서 '봄'처럼 복덩이였다. 당시 가세가 기울어 힘들어하던 시기에 '하나'가 들어왔고, '하나' 때문이지 이후에는 좋은 일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아들, 딸이 결혼하고 손자, 손녀까지 봤다. '하나'도 이를 기뻐하는 탓인지 '손자', '손녀'에게는 절대 복종이다. 아무리 괴롭혀도 절대 물거나 짖지 않는다.
백씨는 '하나'가 암컷이기 때문에 '우리 딸'이라고 부른다. '하나'가 먹는 사료와 입는 옷 등은 모두 최고급이다. 3년 전에는 턱 밑에 종양이 생겨 비싼 수술비를 들여가며 종양수술을 하기도 했다. 한달에 드는 비용 7만~10만원도 전혀 아깝지 않다. 집안에 가져다주는 행복은 그 갑절 이상이기 때문.
이씨는 "처음에는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같이 살다보니 '내 식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말길도 너무 잘 알아듣고 9년째 살다보니 누가 사람이고 누가 개인지 헷갈리기도 한다"고 웃었다.
한편 '하나'는 9년 동안 한순간도 집을 떠나본 적이 없다. 특이하게도 집안에 쥐까지 잡아준다. 요크셔테리어종의 쥐잡는 능력이 고양이 못지 않다고 주인 이씨는 칭찬했다. '하나'는 이 집안과 그야말로 '하나'였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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