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철이 돌아왔다. 3일 영덕 강구항에는 대게잡이가 재개된 이달 1일 출항했던 배들이 속속 들어와 첫 대게 위판이 이뤄졌다. 항구 주변에 밀집한 대게식당의 상인 300여명은 예년보다 어획량이 줄어들어 첫 위판부터 높은 가격으로 경매가가 결정되자 울상을 지었다. 대게 중 덩치가 크고 유독 살이 꽉 찬 '박달대게'에는 영덕대게 명품임을 인증하는 녹색의 '팔찌'가 채워졌다. 대게는 '큰 게'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리마다 생김새가 대나무처럼 곧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검붉은 빛깔에 대나무처럼 쭉쭉 뻗은 박달대게는 영덕대게의 상징으로 꼽힌다. 위판 도중에 박달대게10개 다리 중 1개가 떨어져 나가자 상인들은 "다리 하나에 2만원인데…"라며 탄식할 정도로 박달대게는 고가이다. 찜, 회, 매운탕 등 다양한 요리법이 있지만 소비자들 대부분은 찜으로 속살을 먹은 뒤 게 몸통에 밥을 비벼 먹는 게장 비빔밥을 선호한다.
영덕지방의 또 다른 명품 먹을거리 하나. 청정한 동해바다에서 잡히는 가자미, 오징어, 횟대 등 살이 단단한 생선을 주재료로 만드는 영덕 '밥식해'로 겨울철 전통식품이자 별미로 각광받는다.
◆영덕대게 명품 브랜드의 원천 '박달대게'
강구수협 경매를 거쳐 사들인 박달대게는 각 식당의 수족관으로 들어가 전국에서 밀려드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른 수족관에는 북한과 러시아산, 일반 대게도 널려 있지만 일단 시선은 녹색 팔찌가 채워진 박달대게에 집중된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일반 소비자들은 식당에서 먹을 땐 박달대게 1마리에 20만원 선이라는 식당 주인의 얘기를 듣고 아예 가격 흥정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죽도산' 식당을 운영하는 채병철(56)씨는 살이 꽉 찬 박달대게를 들어올리며 명품 영덕대게의 원천이라고 자랑한다. 자신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요리법을 선보이며 대게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대게찜의 경우 일단 대게를 수돗물에 넣어 숨을 죽인 뒤 고온의 찜통에 넣는다. "대게를 산 채로 찜통에 넣으면 몸부림으로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몸통 속의 게장이 빠져나오기 때문에 일단 숨을 죽인다"며 "비싸게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만족감을 줘야 한다"는 채씨는 찜통에도 솔잎을 깔아 대게에 솔향이 묻어나도록 한다.
박달대게는 수컷보다는 암컷이, 다리보다 몸통 부분의 맛이 더 좋다. 그러나 암컷은 연중 포획이 금지돼 있어 맛보기가 불가능하다. 몸통은 게 뚜껑을 열고 연한 겉껍질을 하나씩 벗기면 오동통하고 맛있는 몸통살이 드러난다. 다리의 경우 맨 끝마디를 부러뜨려 당기면 살 전체가 통째로 빠져나온다. 또 대게 다리의 몸통 쪽 끝부분을 꺾은 후 다리껍질을 길쭉하게 가위질하면서 파먹는 맛도 그만이다. 속살을 빼먹고 남은 게장이 있는 몸통에 참기름과 당근, 김 등으로 볶은 밥을 비벼 먹으면 말 그대로 일품이다. 작은 대게와 야채를 함께 끓인 대게 해물탕은 비린내가 전혀 없고 맛깔스럽다.
신선하고 쫄깃쫄깃한 대게회는 대게의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채씨는 박달대게를 냉각수로 씻은 뒤 다리에 든 속살을 끄집어내는 회 작업을 했다. 얼음이 가득한 물에 게 다리살을 넣고 10여분이 지나자 대게 살은 도들도들 마치 눈꽃이 핀 것 같아 절로 군침이 돌게 한다. 소스를 찍어 입안에 넣자 달착지근하면서 쫄깃한 맛이 그만이었다. 찐 대게와는 달리 비린맛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채씨는 "대게회 작업이야말로 노련한 기술과 정성이 요구된다"면서 "회는 생물 그 자체여서 영양가와 신선도가 최고이고 숙취해소에도 특효"라고 말했다.
◆진화하는 영덕대게 요리기술
영덕갯마을식당 한명희(42·여)씨는 전국 최초로 대게 육수를 이용해 물회나 회국수를 상품화하는 기술을 개발, 지난 2월 특허출원을 했다. 9년째 대게식당을 운영하는 한씨는 서민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포항 물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게를 넣어 삶은 육수로 물회와 회국수를 만들어 시판하고 있다.
대게 물회와 회국수의 맛을 좌우하는 육수는 삶은 대게에서 추출된 뜨거운 육수를 급속 냉각시킨 뒤 숙성과정을 거친다. 육수는 일정온도를 유지하며 최소 3일 이상 숙성해야 한다. 숙성된 육수에 국수를 혼합하는 대게 회국수는 풍부한 영양에다 담백한 맛을 낸다. 대게 물회는 소량의 육수에다 단맛을 내기 위해 과즙, 꿀을 넣고 분말 고춧가루와 고추장 등으로 비벼 식탁에 올린다.
또 육수를 진공 동결시켜 수분을 빼고 분말로 저장해 여름철에도 대게 물회를 맛볼 수 있도록 제조기술을 개발했다. 한씨는 "일반적으로 겨울철에만 먹는 대게를 사시사철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게 돼 대게 홍보와 소득증대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영덕군도 명품 영덕대게의 다양한 요리 개발을 반긴다. 칼슘, 인, 철 등 무기물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키토산의 원료인 키턴과 타우린산이 다량 함유된 대게를 이용해 일정 온도에서 숙성을 거친 한씨의 육수는 사계절 웰빙식품이라고 군은 자랑했다.
◆동해안 고유의 전통음식 '밥식해'
'영덕 밥식해'는 청정 동해바다에서 잡은 가자미, 오징어, 횟대 등을 주재료로 만드는 동해안 전통음식으로 겨울철 별미이다.
식해 제조과정은 생선의 물기를 말려 적당한 크기로 썰고 엿기름으로 하루 동안 발효시킨다. 발효시킨 다음 고두밥과 채썬 무, 다진 마늘, 생강, 소금, 고춧가루 양념으로 버무려 다시 숙성시키는 이중 발효과정을 거친다. 엿기름은 생선의 뼈를 부드럽게 해 뼈를 통째로 먹을 수 있도록 삭히는 역할을 한다. 이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발효식품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부재료다.
영덕 밥식해는 달콤, 새콤, 매콤한 맛 등 세가지 맛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엿기름 성분의 달콤한 맛과 고춧가루의 매콤함, 발효과정에서 새콤한 맛을 내며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자연건강식품이다.
이 때문에 영덕 등 동해안 지역에서는 예부터 대소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이 올 때 특별 메뉴로 식탁에 올렸다. 멀리 유학간 아들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부모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보낸 게 밥식해로 동해안 주민들 사이에서는 애환과 향수가 깃든 음식이다.
한동안 잊혀졌던 영덕 밥식해가 다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영덕 강구농협 농가주부모임의 노력 덕분이다. 강구농협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회원들이 전통음식 보전과 발전을 위해 제조기술을 배운 것. 현재는 '횟대 밥식해' '가자미 밥식해' '오징어 밥식해' 등 세 종류를 생산, 농협 하나로마트와 인터넷 판매 등으로 시중에까지 유통하고 있다. 김장철 생선으로 인기가 높은 횟대 고기로 만든 '횟대 밥식해'는 고기살이 쫀득쫀득하며 비린내가 덜하고 시원한 맛으로 인해 밥식해 중 최고 인기식품으로 꼽힌다.
강구농협 이병한 전무는 "주재료인 생선은 물론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등 밥식해를 제조하는 데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우리 농수산물이어서 지역 농가에도 도움을 주고 영덕의 고유한 전통음식을 계승 발전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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