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옷 입고 덩실덩실…민중의 자화상 보는듯
노(老) 화백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붓 잡은 손은 캔버스를 향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올해로 88세를 맞는 작가 강우문 선생. 흔히 삶을 질곡의 세월이라고 표현한다. 강우문 선생에게 이 말은 참 많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해방 이후 지역뿐 아니라 국내 미술사의 구상미술 흐름에 있어 큰 족적을 남겼다. 자연주의 구상화의 대표적 화가로 꼽히며, 자연의 주관적 해석을 통해 한국적 정서와 색채를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구성했다. 1965년 대한민국 국전 추천작가, 1970~1985년 국전 초대작가였으며 1982~1988년 경북대 예술대학 교수와 학장을 역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였으며, 대구시전 및 경북도전 심사위원장도 역임한 바 있다. 작가로서 적잖은 영예를 안은 셈이다. 하지만 개인적 아픔도 많았다. 특히 올해 병마와 싸운 뒤에는 건강도 많이 악화됐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림을 향한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오히려 몸이 쇠약해질수록 그림으로 향하는 마음은 커져만 갔다. 붓으로 물감을 찍고 캔버스로 옮겨가기에도 힘겨울 정도로 작업은 고통스럽다. 그런 와중에도 거의 완성된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다 지워버리고 새 그림을 그렸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함께 살아온 노 작가는 과연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대구문화예술회관 박민영 학예연구사는 "선생은 자연을 자신의 스승이라 할 만큼 무한한 감성의 원천으로 여겼고, 이는 1950년대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구상으로 정착하게 된 이유였다"며 "1980년대 중반 시작된 '한국적 미'에 대한 탐구는 작품세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고, 전통 춤에서 나온 과감한 조형성과 해학을 작품으로 풀었고, 꾸미지 않은 서민의 춤이 주요 테마로 등장했다"고 밝혔다.
병마와 싸워가며 그려낸 이번 신작들에도 춤을 추는 서민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하얀 옷을 입고 덩실덩실 춤사위를 보이는 민중들은 기쁨에 겨운 듯 보이고, 삶의 고통을 춤으로 승화하려는 듯도 보인다. 원색도 좋지만 갈수록 흰색을 연구하게 된다는 작가는 "우리가 갖고 있는 우리만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터뷰 내내 몇차례 강조했다. 그림 속 '백의의 군중'들은 우리 자화상이자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모습이다. 강우문 화백의 '미수'(米壽) 기념전은 10~21일 동원화랑에서 열린다. 053)423-1300.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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