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in 여성]가야금 라이브카페 '풍류' 김경선 사장

입력 2009-11-05 11:23:19

"라이브 국악의 풍류 한껏 즐겨 보세요"

아직도 1980년대, 90년대 중구 삼덕동 '충청도' 식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음식도 음식이거니와 주인장인 '충청도 아줌마'의 가야금 소리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감정을 실어 식당 손님들 앞에서 가야금 연주를 선보였던 충청도 아줌마 김경선 사장이 최근 가야금 라이브카페 '풍류'(053-767-4884)를 열었다. 소수를 위한 연주를 벗어나 대중적인 무대를 만든 것.

'충청도' 이후 운영했던 한식당 '향원정'이 올 6월 화재로 불타버리자 김 사장은 수성구 두산동에 새로운 개념의 카페를 열었다. 23㎡(7평) 가량의 무대를 갖춘 가야금 라이브 카페로, 매일 오후 9시가 되면 정기공연이 시작된다. 지금은 입춤, 한량무, 가야금병창, 경기민요 등을 40여분간 보여준다. 프로그램은 매달 바뀔 예정이다. 가야금은 김 사장이 직접 연주한다. '향원정'도 즉석에서 가야금 연주와 민요를 불러, 외국인 손님이 40%나 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국악하는 사람들은 무대를 못 떠나요. 새로운 식당을 구상하던 차에 누구나 와서 국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사실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국악을 듣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술 한 잔 앞에 두고 라이브로 국악을 들을 수 있다. 상호 그대로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무대가 작아보여도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최소 10년은 공부해야 사람들 앞에서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으니 말이다.

김 사장은 인터뷰 내내 국악 연주에 대한 사랑을 내비쳤다. 그가 국악을 시작한 것은 새어머니의 권유 때문이다.

"새어머니는 기생 권번에서 엄격한 수업을 받은 분이에요. 제가 소리에 소질이 있다고 장구를 가르쳐 주셨어요. 아버지의 만류로 몰래 지원해주셨죠. 여자는 뭐든 배워 손해볼 거 없다면서요."

그렇게 장구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16세에 본격적으로 국악에 입문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국악에 심취했다. 서울, 남원, 진주 등 전국을 다니며 국악을 배웠다. 그래도 어머니는 '넌 아직도 멀었다'고 채찍질해줬다. 최초의 스승이자, 지금도 가장 훌륭한 스승인 셈이다.

김 사장은 가야금에 있어서는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30년간 배웠지만 아직도 자신의 소리와 연주가 부족하다. 요즘도 일주일에 두 번은 공부를 하러 떠난다. 지금은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를 사사하고 있다.

충청도가 고향인 그녀가 대구에 온 것은 대구 투박한 말투가 좋아서다. "동네에 경상도 남자가 있었는데, 그 말투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무작정 대구로 왔죠. 지금은 경상도 말투가 정겨워요."

오랫동안 식당을 하다 보니 20년 전 손님이 계속 찾아오기도 한다. 주방 요리사도 23년째 함께 해오고 있다. 한결같은 고급스런 맛의 비결이다.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부도가 난 손님이 어느 날 다시 재기했다며 찾아오시기도 해요. 그럴 땐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소리 한 번 들으며 힘든 시절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온 사연들이 큰 힘이 됐습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가야금 선율에는 때로는 트로트가, 팝송이 실리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온 외국인에겐 그 나라 전통음악을 연주해 준다. 그의 가야금 선율이 심금을 울리는 데에는 듣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야금은 무엇일까. "행복하고 좋아서 할 뿐, 잘하지는 못해요. 긴 세월, 친구였고 애인이었고 신랑이었어요.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거든요. 행복한 음악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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