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때문에 신명을 묻을 순 없었다

입력 2009-11-04 15:29:24

■꽹과리로 한 우물을 판 국악인 김수기/박동희 지음/북랜드 펴냄

출판사 '북랜드'의 현존 인물 시리즈 3번째로 국악인 김수기 선생의 전기다.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4호인 김수기는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매화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풍악 소리를 들으면 절로 신이 났다. 마을에 풍물패가 들어오면 쇠재떨이를 막대기로 두들기며 그 뒤를 따라 다녔다. 아직 걷지도 못하던 시절, 어머니 등에 업혀서도 풍악 소리가 들리면 신이 나서 마구 날뛰었다.

개갱 갠지 개갱 갠지…. 꽹과리를 쥔 꼬마 김수기가 맨 앞에 서고 그 뒤를 동네 아이들이 북을 치며 따랐다. 마을 어른들은 "웬 풍악 소리냐?"며 달려나왔다. 동네 꼬마들이 창고에 보관중인 악기를 가지고 나와 한바탕 풍악을 울린 것이다.

"아서라, 이놈들, 악기 버린다."

어른들은 야단을 치면서도 어깨로는 덩실덩실 춤을 췄다. 당장 달려가 악기를 빼앗아야 하는데, 어른들은 오히려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김수기는 소 먹이러 갈 때도 쇠재떨이를 들고 나섰다. 친구들은 깨진 세숫대야, 헌 백철 그릇, 나무통 등 무엇이든 두드릴 수 있는 물건을 하나씩 들고 다녔다. 국악인 김수기는 스스로 꽹과리를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4세 때 마을 풍물패 앞에서 꽹과리 실력을 인정받아 단원이 됐다. 20세엔 정월 보름에 풍물놀이패의 상쇠가 돼 풍물대회에 출전했다. 가난했기에 독학으로 중학교와 고교 과정을 마쳤고, 먹고살기 위해 방앗간에 취직하기도 했다. 38세에 대구 비산농악단 상쇠 임문구 선생으로부터 꽹과리를 사사 받았고, 42세에 날뫼북춤 김수배 선생으로부터 북을 배웠다. 본격적인 국악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이 책은 국악인 김수기의 인생 역정을 기록한 책이다. 천부적인 자질을 가졌음에도 꿈을 펼치기에는 너무나 가난했던 집, 온갖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룩한 한 남자의 삶을 담고 있다. 313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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