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17) 퓨전 안동찜닭

입력 2009-10-31 16:05:56

튀김기름 안 쓴 '웰빙' 조림닭…프랜차이즈 시장에 당당하게 도전

통마늘, 가래떡과 함께 간장소스로 조려낸 안동조림닭. 안동찜닭의 퓨전화로 탄생해 최근 인기몰이가 한창이다.
통마늘, 가래떡과 함께 간장소스로 조려낸 안동조림닭. 안동찜닭의 퓨전화로 탄생해 최근 인기몰이가 한창이다.
안동조림닭의 원조인 안동찜닭. 안동 구시장내 통닭골목에서 만날수 있는 안동찜닭의 인기는 아직도 여전하다.
안동조림닭의 원조인 안동찜닭. 안동 구시장내 통닭골목에서 만날수 있는 안동찜닭의 인기는 아직도 여전하다.
안동조림닭은
안동조림닭은 '쪼다'라는 이름으로 프랜차이즈화 돼 전국 치킨점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주택가 골목마다 들어서 있는 치킨점. 아파트 단지 입구면 수십개의 치킨점이 저마다 간판을 내걸고 밤 늦도록 배달에 열심이다. 맨손으로도 시작할 수 있고, 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서민 장사의 대표격이 바로 치킨점이다. 그러나 10여년 전 IMF환란을 맞으면서 대부분 문을 닫아야 했던 적도 있었다. 어떤 장사도 신통찮았던 당시 IMF환란을 거꾸로 거슬러 치킨점 업계에 역풍을 일으켜 낸 주인공이 바로 잘 알려진 안동찜닭이다. 당시 대도시는 물론이고 읍면 시골장터에 이르기까지 외식소재로 급부상하면서 전국 치킨점마다 다시 간판을 바꿔 달고 장사를 시작하게 했다. 골목상권까지 꽁꽁 얼어붙게 한 IMF환란 한파를 정면으로 돌파해 낸 안동찜닭의 저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안동간고등어와 더불어 안동지방 향토음식의 전국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 낸 안동찜닭이 최근 새로운 변신을 시작하고 있다. 다시 10년 전 전국에 떨친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안동 구시장 통닭골목이 안동찜닭 원조

"그땐 뭐 먹을 게 있었나요. 통닭이 제일이었지요. 애들도 좋아하고 나이드신 어른도 좋아하고…." 안동 구시장 통닭골목에서 만난 한 안동찜닭집 주인의 말이다. 30년전 북적이던 재래시장 경기를 회상하며 통닭의 위력을 이야기했다. 아들 딸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고…, 그리고 내 집도 장만하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까지는 서민 외식거리가 찐빵과 자장면이었다면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1980년대의 서민들은 '통닭'에서 행복함을 찾았다. 당시 TV드라마 속에서 퇴근길 샐러리맨이 튀긴 통닭 한마리를 들고 귀가하는 모습은 행복 그 자체로 비춰졌다. 이 통닭이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전국망을 구축하고 배달 판매 방식을 앞세운 치킨에게 밀리게 되면서 변신을 거듭한 것이 안동찜닭이다. 궁하면 통하는 법. 안동 구시장, 이른바 '통닭골목' 상인들은 그냥 닭 한마리를 통째로 그냥 튀겨내는 종래의 조리 방식에서 벗어나 닭고기를 토막내고 삶아 내는 찜으로 바꿨다. 불린 당면과 감자, 양파, 당근, 양배추 등으로 닭고기 양을 대폭 늘려 내고 마른 고추와 마늘, 생강, 간장 등으로 맛을 낸 안동찜닭은 걸쭉한 국물까지 있어서 5일장날 장꾼들과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잖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당시 치킨 한마리 값(4천원)과 같은 가격이던 안동찜닭은 한 양푼이에 이르는 양만 따져 봐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당시로는 대여섯명이 한자리에서 요기도 하고 소주도 한 잔할 수 있는 값 싸고 먹음직한 메뉴로는 안동찜닭 외에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도 인기상승에 한몫했다. 이처럼 전국 통닭골목이 외국 이름의 치킨 프랜차이즈의 공세에 밀려 차츰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 1990년대 중반까지 안동 구시장 통닭골목 만큼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바로 안동 토종음식인 안동찜닭 덕분이다. 단지 국물이 있어서 배달하기 곤란한 점은 있었으나 나중에 1회용 밀봉 포장용기가 개발되면서 보완됐다. 인구 17만명의 안동시내에 현재 약 80여개소의 치킨집이 영업중이지만 안동찜닭집도 절반에 이르는 40여개소가 문을 열고 성업중이다.

◇진화하는 치킨과 함께 변신하는 안동찜닭

그냥 단순히 빵가루를 뭍혀 기름에 튀겨 낸 치킨은 얼마 전 간장 치킨으로도 만들어지다가 숯불 바비큐 치킨 등 튀김 기름을 쓰지 않고 불에 직접 구워내는 방식으로 조리법이 바뀌고 있다. 치킨이 웰빙 바람을 타고 종래의 기름에 튀겨 내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안동찜닭도 30년 전 그대로 그냥 머물러만 있는 게 아니다. 치킨에 대응해 함께 바뀌고 있다. 찜이 조림으로, 조리 과정부터 바뀌었다. 말 그대로의 조림닭이 탄생돼 눈길을 모은다. 한입거리로 토막낸 닭고기를 삶아낸 다음 간장소스를 넣고 조려내는 조림닭은 조리 과정에 찜닭처럼 튀김용 기름은 일절 사용치 않는다. 퓨전화를 위해 가래떡과 고구마, 통마늘을 넣어 요것조것 먹을거리를 다양하게 보완했다. 웰빙에 맞게 조리방법은 물을 넣고 삶아 졸여내는 전형적인 징기즈칸 요리방식. 그러니 고기가 타거나 기름에 튀겨질 때 발생되는 나쁜 성분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청양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등으로 매콤하고도 닭고기 특유의 감칠맛을 살려 낸 이 조림닭은 안동 고조리서 '수운잡방'에 나오는 간장조림 닭고기 요리 '전계아법'을 근거로 만들어져 닭고기에 간이 짭조름하게 배어 있다. 쫄깃쫄깃하고 감칠맛 나는 퓨전찜닭인 안동조림닭은 5, 6인분이나 되는 찜닭과는 달리 둘이서 한끼 대용식이 될 만큼 양을 적절하게 줄였다. 기름에 튀기지 않았는 데도 고소하기만 한 냄새도 기막힌다. 술안주나 간식으로도 그만이다.

"조림닭은 물기가 없어 치킨처럼 종이상자 포장이 가능해요. 이제 치킨 못지 않게 휴대하기 편해져 경쟁하는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습니다." 안동조림닭을 소재로 '쪼다'라는 이름으로 전국 프랜차이즈에 나선 하태진(35)씨는 다시 10년 전 전국에 떨친 안동찜닭의 명성을 되찾아 오겠다고 벼르고 있다.

◇향토 농산물 유통 통로인 안동조림닭

"조림닭에 쓰는 간장소스는 한달간 숙성시켜 만듭니다." 하씨는 '간장에다 물엿과 다진마늘·양파·생강·청양고추·후추 등을 넣고 걸쭉하게 숙성시켜 낸 조림닭 간장소스가 감칠맛을 내는 키 포인트'라고 귀띔한다. 지난해 상표등록을 한 하씨는 석달 전에 로고와 디자인도 완성했다. '쪼다'라는 상표명은 조림닭을 토대로 쪼림닭-쪼닭에서 지었다고 했다. "쪼다라는 말이 바보의 속어이기도 하잖아요. 이익보다 고객의 건강만을 생각하는 바보스런 사람이라는 뜻도 되지요." 하씨의 설명은 상표 속에 숨어 있는 뜻이 더 깊다는 이야기다. 이번 주초 안동시내 송현점에 인기 록밴드그룹인 FT아일랜드 홍기 일행이 찾아 오는 바람에 대학생 100여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는 등 안동조림닭 쪼다의 인기가 날로 더해지고 있다.

대도시를 근거로 하는 치킨 프랜차이즈는 대부분 식자재를 수입에 의존하지만 이곳에선 우리 농산물만 쓴다. 그것도 가능한 한 유기농 농산물만 골라 쓴다. 5개 점포에서 한달동안 쓰는 양은 고구마 300㎏, 마늘 600㎏, 쌀떡 750㎏, 양파 250㎏, 양배추 300㎏, 대파 100㎏에 이른다. 이들이 매입하는 닭만해도 월 7천500여 수에 이른다. 농업과 양계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양이다. 5개 점포에 고용된 파트타임 등 일용직을 제외한 정규인력만 해도 25명이나 된다. 어려운 시절 사회에 나온 젊은이들의 창업이라서 그런지 자신들의 일자리는 물론이고 고용창출까지 이뤄낸 게 기특하기 그지없다. 계산하는 것을 따져 보면 사업성이 높기만 하다.

"닭 한마리 값이 4천200원입니다. 조림닭 한마리는 1만6천원이니까 단순 계산상으로만 보면 1만1천800원이 남는 장사지요. 인건비와 임대료, 부자재 재료비를 제하고도 한마리를 팔면 최소한 8천400원의 마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면 안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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