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 문화재 지표조사도 제대로 않고 앞산 터널공사 강행
신석기시대 초반 대구 수성구 파동 용두골 일대. 동물가죽 옷을 걸친 석기인들이 바위그늘(구석기 집터) 주변에 옹송거리며 모여 있다. 하나같이 20m 높이의 절벽 끝을 올려다보고 있다. '후다닥' 하는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린다. 절벽 위에서 집채만 한 멧돼지가 떨어진다. 하지만 돼지는 아직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다. 이럴 땐 두 손으로 받쳐 든 돌을 퍼부어야 한다. 돼지를 몰던 절벽 위 무리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같은 지역. 바위그늘이 주변에 널려있다.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신천에서 물고기도 곧잘 잡는다. 마을 장정들은 근처 채석장에 모두 모였다. 지난주 족장이 죽어 고인돌을 만들어야 한다. 이럴 땐 겨울이 고마울 따름이다. 꽁꽁 얼어붙은 신천 위로 수십t 무게의 돌을 나르기는 한결 수월하다.
28일 2시간 동안 둘러본 용두골 일대엔 선사시대부터 청동기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바위그늘은 선사시대인이 비와 바람을 피하며 생활하던 곳이다.
그러나 용두골 유적지는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대구시가 유적지가 포함된 '상인∼범물' 구간 4차 순환도로 개설 공사를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사는 2012년 개통을 목표로, 현재 12%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바위그늘은 처참히 망가져 있다. 어른 3, 4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바위틈은 촛불로 밝혀져 온통 그을음이 묻어 있다. 바람이 일 때면 촛불 꼬리가 춤을 춘다. 그을음은 더욱 짙어진다. 군데군데 흰색 페인트로 휘갈긴 낙서도 보인다. 공사 구간 표식인 청색·붉은색 깃발이 곳곳에 꽂혀 있다.
동행한 앞산꼭지 임성무 문화재연구원(교사)은 "대구시가 이 일대 문화재 지표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공사를 하고 있어 5천년 역사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며 "시민들도 이곳이 석기시대 유적지인 줄 모르고 기도 장소쯤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네모반듯한 돌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 채석장으로 추정되는 곳. 하지만 이곳도 언제 뭉개질지 모른다. 바위 전체를 공사띠가 감싸고 있다. 대구시는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한 적 없다.
채석장을 뒤로한 채 오솔길을 따라 10여분쯤 걷다 보면 앞산 주상절리와 마주친다. 바위기둥은 육각형으로 갈라져 있다. 앞산 탄생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 돌이라는 게 학계 설명이다.
대구시가 2004년 발간한 대구 향토사 문화재 연구 보고서는 파동 일대 문화재가 발굴됨으로써 대구 역사가 3천년에서 5천년으로 끌어올려졌다고 적고 있다. 특히 바위그늘 유적지 제일 밑층에서 출토된 자갈돌은 구석기 시대 유물일 가능성이 있다며 추후 조사가 필요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구 미래대 김약수 교수(고고학)는 "바위그늘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선사시대 유적이다. 용두골처럼 밀집된 곳은 더더욱 사료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벌건 속살을 드러낸 산 중턱에는 공사 중인 굴삭기 굉음이 그칠 줄 모른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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