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외래

입력 2009-10-26 16:35:19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도 외래 진료를 한다. 이렇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외과의사는 매일 수술만 하는 줄 아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제 수술일은 어느 어느 요일입니다"라고 하면 "어? 그러면 수술 없는 날은 뭐합니까?"라고 한다. 그래서 "외래 진료도 해야지요"라고 대답하면 "아, 참! 그러네요"라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듯 신기해한다.

그렇지만 수술하는 의사에게 외래 진료는 매우 힘든 일과다. 외과의사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수술보다 외래가 훨씬 힘들다"고 말한다. 질병만을 마주하면 되는 수술과 달리 외래는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든 싫든 수술 전과 퇴원 후의 환자 관리가 수술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은 외과학 교과서에도 뚜렷이 명기되어 있는 의학의 상식이다.

그래서 먼저 외래에서 환자를 만나면 과연 수술의 대상이 되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수술로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이 되면 어떤 수술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다른 지병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그에 따른 검사와 대책도 마련해야 하고, 평소 복용중인 약에 대한 대비도 세워야 한다. 대학병원까지 오는 분들 중에는 서너 가지의 다른 지병들로 한 보따리씩의 약들을 복용 중인 경우가 보통이다.

그런데 내가 보는 질환이 암이라서 그렇겠지만 외래에 오는 환자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얼마나 빨리 수술 받을 수 있는가'하는 것뿐이다. 물론 병이야 대부분 이미 알고 왔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했으니 얼마나 경황 없이 급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라는 속담처럼 다급할수록 차근차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본인이 가진 지병의 위험은 무시하고 무작정 빨리 해 달라고 조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 이 대목이 가장 힘든데, 이럴 때면 혹시라도 수술의 질보다 양에 더 목적을 두는 병원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암으로 수술을 하고 나면 진단서에 으레 삽입되는 문구가 있다. '향후 평생 관찰을 필요로 함'이라는 것인데, 그래서 수술 후에도 계속 주기적으로 외래에서 검진을 받는다. 때마다 그에 맞춘 검사가 있고, 혹시 재발이라도 발견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모자라는 영양소는 보충을 하고, 소화 기능에 이상이 있다면 그에 따른 약도 먹어야 한다. 병이 심했던 경우는 보조 약물치료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외과에서 수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외래인데, 오래전 일이 문득 생각난다. 우리 딸이 세 살인가 네 살 때쯤 내가 출근하려는데 불쑥 물었다. "아빠, 오늘 수술이야?" 내가 "아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럼, 외래야?"라고 되묻는다. 내가 하도 신기해서 되물었다. "다현아, 외래가 뭔데?" 그러자 딸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건 내가 모르지!"

정호영)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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