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취업 책만 읽어서 되겠습니까"
"대학생이라면 1년에 책 50권 정도는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공이나 취업과 관련된 게 아니면 책이라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책을 많이 읽힐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내 힘으로라도 시작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계명대 동산도서관 학술정보서비스팀에 근무하는 김한림(46·여)씨는 지난 3월 혼자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책 읽기의 재미를 느끼게 하고 책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하는 '캠퍼스에 책 향기 퍼뜨리기' 사업이었다.
먼저 수업 준비나 리포트 작성을 위해 필요한 책을 물어오는 학생들 가운데 독서에 관심이 많은 학생을 찾았다. 조심스럽게 독서토론클럽 결성을 제안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아 금세 9명이 모였다. 3월 20일 첫 모임을 갖고 오카자키 다로가 쓴 '1일 3분 성공 습관'을 한 권씩 나눠줬다.
"자기계발 서적을 모두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우선 자신의 습관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책 읽기를 생활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책을 선정했습니다."
문제는 책을 어떻게 구하느냐는 것. 아무리 장서가 많은 도서관이라도 같은 책을 10여권씩 비치하지는 않는다. 베스트셀러나 신간은 여러 권이 있어도 대출 예약까지 밀릴 정도여서 더욱 어렵다. 김씨는 주저없이 자신의 지갑을 털었다.
"1년 동안 1주일에 1권씩 읽게 하면 50권은 읽을 수 있을 걸로 생각했지만 방학이나 시험을 생각하니 20권이 적당했습니다. 300만원 정도 쓸 각오를 했죠. 용돈 아끼고, 옷 몇 벌 덜 사고, 먹고 싶은 것 좀 참으면 될 것 같았습니다."
독서토론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두들 쭈뼛쭈뼛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 불편해했다. 김씨는 책 내용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딱딱한 토론장이 아니라 자신이 책을 읽을 때의 느낌을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랑방이 되도록 토론을 이끌었다. 책의 소재와 주제는 물론 표지디자인, 책과 관련된 분야 등 어떤 것이든 생각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행을 학생들이 돌아가며 맡도록 했습니다. 세 번째 모임을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더군요."
모임에서 가장 발표를 많이 한다는 중국 유학생 두흔(한국문화정보학과 4학년)씨는 "수업시간에 토론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여기서는 발표를 많이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혼자 책을 읽으면 개인적 관점에서만 생각하는데 토론을 하면 다른 사람들의 관점과 고민까지 공유하니 여러 권을 읽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소문이 나자 한달도 안 돼 팀 하나가 더 꾸려졌고, 2학기에 접어들자 어느새 4개 팀에 43명이 참여할 정도로 클럽이 커졌다. 대학 측도 관심을 보이며 필요 경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보다 나은 토론을 위해 4명의 지도교수도 위촉했다. 지도교수를 자원한 구교태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평소 전공서적 외에 소홀했던 책 읽기를 자연스레 할 수 있는데다 학생들의 생각과 고민을 같은 눈높이에서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며 "막상 참여하고 보니 예상보다 학생들의 토론 수준이 높고 진행과 발표도 능숙해 놀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대보다 일찍 학생들의 변화가 두드러지자 올초 잡았던 프로젝트의 목표를 한 단계 높였다.
"더 많은 학생들이 1년에 50권씩 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광범위한 책 목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분야별, 장르별로 5천권 정도를 디자인해 도서관을 찾는 학생들에게 읽기를 권할 생각입니다. 독서토론클럽도 더 늘려 창조적인 계명인 그룹으로 발전시킬 작정입니다. 계명대 캠퍼스 전체에 책의 향기가 가득할 날도 멀지 않을 겁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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