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듬뿍 담은 반가운 밥상
가을이다. 아무런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아도, 그 이름만으로 풍족함과 쓸쓸함을 전해주는 그런 계절이다.
인공적인 맛은 배제하고 지금 이 계절을 최대한 담고 있는 밥상을 찾아나섰다.
사찰음식을 하는 죽비. 대구 인근에는 절은 많지만 의외로 사찰음식 전문점은 거의 없다. 죽비는 그러하기에 더욱 반가운 식당이다.
팔공산 자락 죽비의 정원에는 가을이 가득하다. 선홍색의 탐스러운 다알리아 꽃송이가 흐드러지고, 쑥부쟁이가 지천으로 널렸다. 뽕나무, 매실나무, 배롱나무도 한쪽을 차지한다.
사장 박영숙(57)씨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다만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2남4녀의 맏이답게 새로운 것을 만들면 동생들을 불러모아 나눠주곤 했다.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대안 스님, 지수 스님에게 사찰음식을 배우면서 식당을 차렸다. 그게 5년 전이다.
"간장, 된장만 있으면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걸요. 주부라면요."
박 사장은 내내 겸연쩍은 웃음으로 겸손해했다. 간장, 된장만 맛있으면 누구나 조물조물 무쳐낼 수 있는 메뉴들일 뿐 특별할 게 없는 요리란다. 하지만 그의 내공은 깊고 넓었다.
두부소박이. 버섯과 야채를 다져 두부사이에 넣고 구워 샌드위치처럼 멋을 냈다. 우엉잎, 곰취, 머위잎 등에다 두부소스를 끼얹어 샐러드를 낸다. 두부소스는 삶은 두부에 올리브유, 식초와 소금을 넣고 갈았다.
버섯우거지탕은 된장과 들깨가루, 생콩을 으깨 넣었다.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버섯찜도 별미. 해물을 넣지 않고 대신 버섯으로 매콤한 찜을 해, 밋밋할 수 있는 밥상에 포인트를 줬다.
이 집 밥상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각종 밑반찬들. 들깨가 익기 직전 따서 장아찌로 만든 들깨송아리 장아찌는 들깨의 고소한 맛이 씹힌다. 가죽, 재피 장아찌와 머위 줄기, 고구마 줄기 등은 어르신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계절마다 제철에 갈무리해둔 자연재료를 일년 내내 쓴다.
사찰음식이라 고기와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사용하지 않지만 밥상은 심심하지 않다. 고기가 필요한 곳엔 콩고기를 사용해 맛을 내고, 육수는 표고버섯과 다시마로 낸다. 이 집의 단맛은 다시마로 조절한다. 철저한 채식 위주 식단 덕에 완전한 채식주의자들과 스님들도 많이 찾아온다. 조리방법은 가능한 기름 사용을 줄여 먹고난 뒤 속이 편하다.
마지막에 후식으로 나오는 차와 다식도 수준급이다. 스님이 만든 연잎차에 감자가 나온다. 삶은 감자인데도 쫄깃하다. 삶은 후 절구에 한참 찧어 인절미처럼 찰기를 낸 것이다. 여기에 땅콩을 입혀 고소하다. 물론 다식은 수시로 바뀐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박 사장은 요리를 진정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나물 한 접시만 해도 7종 남짓 나물이 올라가고, 장아찌와 밑반찬류만 해도 15가지에 이른다. 잔손이 정말 많이 가지만 그녀는 즐겁다고 했다.
제철 푸성귀가 푸짐한 밥상의 비결은 그 집의 정원. 원예를 즐기는 박 사장의 정원에는 각종 꽃과 풀들이 즐비하다. "들깨잎, 호박, 돼지감자 등 재료를 조금씩 사용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매번 구입할 순 없거든요. 그래서 필요한건 대부분 마당에서 키우고, 없는 것은 이웃집 농가에서 구입하죠." 진정한 로컬 푸드(local food)다. 그 집 정원에선 눈도 호사한다. 철마다 꽃을 볼 수 있게 계절별 꽃을 절묘하게 배치했다. 지금은 국화가 만개할 차례다.
죽비는 주로 정식을 판매한다. 정식 1만원. 콩불고기 요리를 따로 주문할 수 있다(2,3만원).
팔공산 갓바위뒷길 와촌면 신한리. 셋째 화요일은 휴무다. 053)853-3341.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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