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흥의 책과 예술]교수대 위의 까치(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입력 2009-10-21 16:00:16

진중권의 눈으로 본 12편의 그림 이야기

여름의 긴 햇살이 잠깐 힘을 잃는 듯하더니 불현듯 가을이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남하하는 붉은 단풍이 작은 손수건에 번지는 각혈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 빠른 걸음을 지닌 계절의 외로움 탓일까? 뜨거운 햇살과 모진 바람 사이에 서있는 가을, 그 시간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치열한 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진중권의 신작 『교수대 위의 까치』를 읽는다. 작가 진중권의 눈빛은 선하다. 그리고 그의 글은 늘 그의 선한 눈빛을 닮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의 이름 앞에 달려 있는 진보논객이라는 꼬리표는 마치 그의 글이 한쪽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편향적인 것처럼 오해받게 만든다. 그를 적대시하는 일부 극우 논자들은 그의 글이나 말을 젊은이들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치기어린 객기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미학자로서 좋은 글을 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하는 '공부하는 사람'이다.

소위 '미오'로 불리우는 『미학 오디세이 1,2,3』이 그의 개인적인 목표에 이르는 여정이었다면 새로운 책『교수대 위의 까치』는 전작보다는 보다 대중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대중적이란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 있겠지만 기존의 글보다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작품의 해석은 그것이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마치 동일하거나 보편적인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여겨져 왔고 교육되어져 왔다. 진중권은 "대중을 예술적 문맹으로 간주하고 그들에게 작품을 읽어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작품을 읽도록 자극하는 것"즉 창조적 독해야말로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해서 그는 저 유명한 "해석에 반대한다"는 수잔 손탁(Susan Sontag,1933~2006)의 말조차 정형화되거나 특권화된 해석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해석되지 않는 작품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12편의 그림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그림 읽기가 실려 있다. 특히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1525~1569)이 그린 나 조반니 프란체스코 카로토(Giovanni Francesco Caroto, 1480~1555/1558)가 그린 를 해석하는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적인 해석은 마치 토론하지 못하고 틀에 얽매인 우리 사회의 어리석은 단면을 꼬집는 것처럼 보인다. 폭력적인 편 가르기에 열중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보수든 진보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또한 암울하고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 비난이 아니라 비판을 수용하는 사회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가 책의 서두에 쓴 "정의는 관념이고, 폭력은 물질이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원시적인 물질의 힘이다."는 말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비록 지금은 다수가 아닐지라도 다수를 위한 그의 노력이 인정받게 되기를 바라는 여운이 이 책의 끝에 있다. 을씨년스러운 교수대 밑에서 춤추는 농민들이 꿈꾸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265쪽,1만5천원.

여행 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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