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녹색'이 갑자기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이미 태어난 지 20년이나 된 '녹색'이란 용어에 세계 각국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녹색기술은 그동안 경제성이 없어서 기업이나 국가가 그 개발과 활용에서 매력적으로 느낄 수 없었던 것이 그간의 사정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CO₂배출감축 의무대상국이 확대되고 감축량에 대한 규제가 확대될 것이 분명해지면서 모든 기업과 국가에 이 문제가 위협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 합의된 교토의정서는 선진 38개국의 경우 1990년의 온실가스 배출 수준의 평균 5.2%를 2012년까지 감소시키도록 했으나 한국은 규제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예외없는 적용'이 예상됨에 따라 한국도 이러한 의무를 회피하기 어렵다.
2008년 기준 한국 GDP의 수출의존도가 48%로 독일(35%)과 일본(16%)에 비해 현저히 높은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국제사회의 압력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세계 최강인 미국은 교토의정서 비준은 거부하면서도 최근 하원 에너지통상위원회에서 2020년까지 온실배출가스를 17%, 2050년까지는 83% 감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내년까지 540억 달러를 녹색산업에 투입하는 내용의 법안도 통과시켰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녹색산업성장'을 정부의 경제부활을 위한 주요 시책으로 선언하고 8월에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에 근거한 세 가지 감축목표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기업으로서는 이런 조치가 달갑지는 않겠지만 이를 잘 활용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무릇 모든 규제는 규제를 받는 전통산업의 비용을 증가시킴과 동시에 규제로 인한 새로운 산업의 탄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위기가 되기도 하고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17개 신성장동력 중에는 신재생에너지, 탄소저감에너지, 고도 물처리, 발광다이오드(LED) 응용, 그린수송시스템, 첨단그린도시 등 6개가 녹색기술산업이어서 녹색기술산업에 대한 정부의 높은 관심과 의지를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를 지난 정부의 10대 차세대성장동력사업과 성격 측면에서 비교해 보면 현정부의 신성장 동력산업이 전통산업을 기반으로 한 녹색기술산업 성장을 고려한 점이 큰 차이로 보인다.
자동차, 철강, 화학 등의 전통산업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어서 이산화탄소 등 오염물질의 배출도 많은 산업이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에너지가격의 급등과 환경규제 강화는 전통적인 산업들로 하여금 일찍부터 에너지 사용 및 오염물질 배출 감축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노력하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전통산업에서 녹색기술이 성공적으로 산업화하고 있다.
이제 자동차산업에서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없이 경쟁에서 이길 수 없음이 분명해졌고 화학기업들은 전기자동차에 사용하기 위한 리튬 이온 배터리나 태양전지모듈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철강업에서는 초고강도강 등 자동차용 경량소재 개발과 함께 석탄가스화 기술 및 수소를 이용한 제련기술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녹색정책이 실현되면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제조업으로서는 이에 대응하는 신기술 개발과 탄소거래세 등으로 인해 원가 측면에서 부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온실가스 문제는 지역, 국가, 성별, 계절에 관계없이 인류 전체에 영향을 주는 공공의 문제다.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었던 제조업의 입장에서 보면 불합리한 정책에 의해 불평등하게 원가부담을 떠안게 되면 경쟁력에 치명적인 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온실가스 문제의 공공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며 기업 경쟁력에 미치는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신기술 개발 및 탄소거래세 운용 측면에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재정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권오준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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