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권 외면…걷기 힘든 대구

입력 2009-10-21 09:40:36

市, 인도 설치·확대 필요구간 조사도 않아…"구청 몫" 떠넘겨

대구가 '무늬만 걷고 싶은 도시'로 추락하고 있다.

중앙로 대중전용교통지구에 매몰된 대구시가 정작 걷고 싶은 도시를 위한 '보행권'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과 부산 등 다른 지자체들은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인도·육교·횡단보도 정비부터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 비전 없는 대구시는 정비 계획은커녕 구청 떠넘기기와 주먹구구식 추진에 급급한 실정이다.

◆인도 없는 도로=13일 대구 북구 산격로(대도시장삼거리~산격초교네거리 500m). 도로를 따라 걷는 동안 20번이나 차가 오지 않나 뒤를 돌아봤다. 왕복 2차선 도로(폭 12m)지만 인도가 없는 탓. 도롯가에 1m 폭으로 그어 놓은 노란선 안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차량을 피해 차도로 오를라치면 그때마다 요란한 경적소리가 울린다.

2003년 대구시 보행환경개선 기본계획 용역기관은 이곳 인도 신설을 제안했으나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한 게 없다. 대구시 담당은 "20m 이하 도로는 구청 소관"이라며 "당시 용역은 계획일 뿐"이라고 했다. 대구시는 '구청 소관'이라는 이유로 시내 4~12m 소로 1천827km에 걸쳐 이제껏 단 한 번도 인도 설치 및 확대가 필요한 구간을 전수 조사하지 않았다. 반면 지난 6월부터 8~12m 도로(1천813㎞) 전수 조사를 벌이고 있는 부산시는 인도 설치 및 확대가 필요한 670곳을 찾아내 정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철거 없는 육교=14일 부산 중앙로. 시야가 확 트였다. 지난달 대한항공 앞, 중부경찰서 앞 육교가 한꺼번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철거 자리에는 보행자를 위한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설치됐다. 올 한 해에만 15억2천만원을 투입해 27개 육교를 철거한 부산시는 2011년까지 36개 육교를 더 뜯어낸다. 대상 선정부터 예산 편성까지 시가 모두 책임진다.

이에 반해 대구시는 시내 52개 육교에 대한 모든 철거 책임을 구청에 떠넘기고 있다. 역시 '구청 소관'이라는 이유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지금껏 서구청 단 한 곳에서만 3개 육교가 철거됐다.

◆복원·신설 없는 횡단보도=15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서자마자 동·서·남·북 4개 횡단보도가 반갑다. 서울시는 1~8호선 지하철이 생겨날 때마다 하나씩 지워진 역주변 횡단보도를 1990년대 말부터 되살리고 있다. 광화문네거리 경우 1999년 남북방향에 이어 2005년 동서방향 횡단보도가 복원돼 40년 만에 전면 되살아났다. 이곳 횡단보도는 8월 1일 개장한 차 없는 거리(광화문 광장)를 연결한다. 전체 16차로 중 중앙 6차로에 조성한 광화문 광장은 평일 한낮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반면 대구는 2005년 지하철 2호선 건립 당시 두류네거리, 반월당네거리, 봉산육거리 횡단보도를 없앴다. 보행권보다 지하상가 활성화를 선택한 결과다. 여기에 2006년부터 제기돼 김범일 대구시장이 지난해 7월 공언한 한일극장 앞 횡단보도 신설 역시 여태 감감무소식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6월 시내 111곳에 횡단보도 확충·정비 5개년 계획을 마련한 데 반해 대구시는 4년이 지나도록 횡단보도 하나조차 새로 긋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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