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는 9월 말 시작된 2009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한창이다. 올해의 개막작품은 이미 여러 번 공연된 적이 있는 푸치니의 '투란도트'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와 함께 7년째를 맞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가장 자주 공연된 작품들이다. 즉 19세기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 작곡가들 중에서 베르디와 푸치니는 단연코 최고의 스타이자 거장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1813년 10월 10일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부세토에서 훗날 세상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자주 그의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다는 주제페 포르투니노 프란체스코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가 태어났다.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이었던 베르디는 18세가 되자 자신의 꿈인 음악가가 되기 위해 당시 이탈리아 북부 최고의 대도시 밀라노 음악원으로 찾아갔으나 입학 허락 나이가 너무 지났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만다. 하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혼자 개인교습을 받으면서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베르디의 초기 오페라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국과 사회가 인접국가인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간섭과 압박으로 독립적인 주권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던 실정을 반영한 애국적인 내용이 많았다. 베르디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오페라를 통해 애국심과 독립정신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VIVA VERDI'(베르디의 이름이 당시 이탈리아 국왕 빅토리오 에마뉴엘의 이니셜과 같았다고 한다)는 모든 이탈리아인들의 마음속에 한결같은 구호로 메아리쳐 나갔던 것이다.
베르디의 나이 37세가 되던 1850년 단 40일 만에 '리골레토'를 완성하고 이듬해 베네치아에서 초연한 후 베르디는 전세계가 사랑하는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의 명성을 얻게 된다. 특히 '리골레토' 중에 나오는 만토바 공작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은 오늘날까지 오페라 아리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선율이기도 하다. 이후 1853년 프랑스 작가 '삼총사'의 저자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인 뒤마 피스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원래는 '길잃은 여인'이라는 의미지만 오늘날 극중의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동백꽃을 꽂고 등장했다는 의미로 '춘희'라고 부른다), 1871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아이다'(AIDA), 1887년 셰익스피어의 명작,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오텔로'(OTELLO) 작곡에 이르기까지 베르디는 비극적 오페라, 혹은 베리즈모(verismo; 사실주의 오페라) 오페라에 있어서 대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롯시니에서 도니젯티를 거쳐 벨리니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낭만 오페라의 아름다운 선율(멜로디)을 중요시하는 전통적인 기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하지만 베르디는 단순히 이런 전통의 계승자로만 머물러있지 않고 지금까지 이탈리아 오페라가 크게 다루지 않았던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효과와 클라이맥스를 최대한 이용한 연극적 전개를 도입했다. 그래서 베르디의 오페라는 다른 작곡가들의 오페라보다 청중들이 오페라 속에 쉽고 빠르게 빠져들 수 있게 된다. 다 똑같은 내용의 그저 그런 멜로드라마지만 베르디의 손을 거치면 하나하나가 극적(劇的)으로 음악적으로 빼어난 예술작품으로 승화된다고 할까. 베르디가 없는 오페라축제를 보내면서 귓가에 비올레타의 '아 그이였던가'(E strano e strano. Ah, fors'e lui!)가 아련하게 들리는 듯하다.
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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