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잘하면 스타…막말에 설전, 몸싸움도 불사

입력 2009-10-17 07:40:58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국감장 천태만상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국정감사는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다. 국회의원들의 한 해 농사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잘 하면 스타 반열에 오르고, 잘못하면 언론의 질타를 받기 일쑤. 이래저래 눈칫밥이다. 그래서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막말에다 가벼운(?)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료 싸움은 이제 양반인 셈. '리얼한' 국감을 위해 과격한 보조도구까지 국감 현장에 불쑥 등장하기도 한다. 국감장이 치열해질수록 오로지 '국감 성공'을 위해 생고생해야 하는 이들도 넘쳐나기 마련.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국감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싫을 만큼 국감 현장에서 가장 고생하는 집단이다. 피감기관 관계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연일 쏟아지는 의원들의 자료 주문도 모자라 국감 기간 동안에는 아예 국회에 상주한다. 날선 공방이 이어지는 올해의 국감 현장을 들여다봤다.

"우린 생고생입니다."

국감 시즌에 돌입하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광경은? '의원 사무실의 여관화'다.

또 국감 시즌에 국회의원이나 피감기관 관계자들보다 더 골머리 아픈 사람은? 정답은 '국회의원 보좌관'이다.

보좌관들은 국감 때 '4중고'를 겪는다고 한다. 국감 시작 전부터 정책 보좌관들의 경우 집에 가기를 포기해야 한다. 의원들의 지시에 따라 피감기관들로부터 국감 자료를 주고받는 준비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감 시즌에 돌입하면 아예 세면도구와 숙박용품을 의원회관으로 옮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모시는 의원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감은 누가 얼마나 중요한 정보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의원들이 국정감사 스타로 등극하느냐가 달려 있어서다. 사실 국회의원들의 국감 발언의 숨은 일꾼은 보좌관이다. 일일이 국감자료를 직접 챙기는 국회의원들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국감 스타에는 국회의원들의 머리가 아닌, 보좌관들의 머리와 발품의 대가가 온전히 녹아 있다.

보좌관들의 또 다른 고충은 바로 피감기관과의 실랑이 벌이는 일이다. 피감기관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국감 승패가 좌우될 정도다. 보좌관은 피감기관들로부터 국감 자료를 받고, 피감기관은 보좌관에게서 질의서를 받는다. 보좌관들은 국감 자료가 미흡하거나 원하는 자료를 주지 않을 경우 질의서를 주지 않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요즘은 행정부 등 피감기관의 힘이 커지고, '할 말은 하겠다'는 피감기관들이 늘면서 보좌관들의 고충은 배가 되고 있다.

일부 피감기관은 아예 국감 자료를 주지 않거나 불성실 자료를 남발하거나 국감이 임박해 자료를 주는 등의 방법으로 보좌관들을 괴롭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감기관으로부터의 접대는 절대 사절이다.

보좌관들이 겪는 또 다른 고충은 바로 언론과의 접촉. 아무리 국감 준비를 잘해도 언론을 통해 모시는 의원이 뜨지 않으면 헛일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국감 전부터 출입기자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전적으로 보좌관들의 몫인 것이다.

국감을 마친 보좌관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모시는 의원들을 스타로 만들 경우 고생했다는 칭찬 정도가 대개다. 보좌관들의 생사여탈권은 국회의원이 쥐고 있어 국감을 망칠 경우 목숨이 파리 목숨이 될 수도 있기 때문. 국감에서 의원들을 띄우기는커녕 언론의 핀잔거리로 전락시켰을 경우 보좌관은 자칫 책상을 비워야 할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지난 17대 때 한 국회의원은 임기 동안 보좌관을 다섯 번이나 교체했다고 한다.

◆일단 '튀어야 된다'

이달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감 자리. 때아닌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현장에나 등장해야 할 경찰봉과 죽창이 국회의원들의 눈앞에 등장한 것. 바로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이 죽창과 경찰봉을 가져나와 죽창의 위험성을 직접 시연한 것이다. 이 의원은 4.5m의 죽창을 직접 들고, 전경 복장을 한 보좌관에게 경찰봉과 헬멧을 쓰게 한 뒤 공격 시늉을 했다. 이 의원은 서류 뭉치가 아닌, 시위 도구를 직접 가져와 경찰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 셈이다.

또 13일 주요 언론엔 박스가 수북이 쌓인 사진이 실렸다. 민주당 김재윤 의원이 그 주인공. 김 의원은 12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부 산하 기관에 대한 국감에서 "피감기관으로부터 국감 시작 30분 전에 국감 자료를 받았다"며 환경부의 안하무인(?)을 언론에 공개했다. 언론에 공개된 사진은 김 의원이 자신의 국감 자리 앞에 '6개월간 자료 요구에 국감 30분 전 제출한 환경부의 감사자료'라는 문구와 16개의 서류 박스를 쌓아둔 모습이다.

이번 국감에선 예전 점잖은 상임위원장상이 '튀는' 상임위원장상으로 바뀌는 추세다.

방송인 출신인 보건복지가족위의 변웅전 위원장은 '칭찬 소개'로 국감 진행을 매끄럽게 하고 있다. 옛날 아나운서 때의 방송 진행 실력을 국감에 접목한 것. 환경노동위의 추미애 위원장은 아예 국회의원들처럼 '선수'로 뛰고 있는 스타일이다. 피감기관 측과 열띤 토론을 마다하지 않고 있어 설전도 자주 벌여 피감기관을 당혹게 하고 있다.

◆국감의 단골, '증인'

국감에 임하는 의원들은 국감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시로 증인을 채택하고 있다. 증인 채택은 늘고 다양화되는 추세지만 무턱댄 증인채택 논란도 적잖다.

이번 국감에선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의 '김제동 KBS 스타골든벨 도중하차'가 연일 공방이다. 민주당은 아예 '김제동 일병 구하기'에 나설 정도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진보 성향의 김씨가 KBS 가을개편에서 지난 4년간 진행했던 '스타골든 벨' 진행을 맡지 않게 된 게 정권 외압이 개입된 '코드 인사'라는 주장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연예인 교체에 대해 정치권이 왈가왈부하면 또 다른 방송 장악이 될 수 있다고 공방전을 펴고 있다.

김씨에 이어 MBC의 100분 토론 사회자인 손석희 교수의 교체 문제가 문방위 국감 도마에 오르고 있다.

또 인기 걸 그룹인 소녀시대의 '윤아'의 문방위 증인 채택도 연일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대개는'연예인이 봉인가' '연예인을 이용한 언론플레이' 등의 비난이 적잖다.

반면에 대접받는 증인도 있다. 바로 케니스 크로퍼드(66)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장이 주인공. 크로퍼스 단장은 기상청이 올해 고액의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한 '귀한신 몸'이다. 크로퍼스 단장은 13일 기상청 국감에 첫 데뷔했다. 외국인이라는 보너스도 듬뿍 받았다. 정중한 질문과 답변만 국감장을 오갔다.

일단 부르고 보자는 식의 증인들도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권 실세로 주목되는 박영준 국무조정실 차장, 민주당 정세균 대표, 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이다.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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