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백장청규

입력 2009-10-16 10:57:47

중국 선종의 역사에서 사원 제도를 확립한 백장 스님의 좌우명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은 이제 불교를 떠나 삶의 한 지침으로 대중화됐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규범은 승려라면 으레 걸식과 시주로 먹고살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주지든 누구든 승려는 모두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육체노동의 의무에 백장은 스스로 엄격했다. 말년에 제자들이 스님의 건강을 염려해 연장을 감추어 버리자 백장은 일할 수 있게 해달라며 단식으로 맞서기도 했다.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규범을 지킨 백장의 개혁은 훗날 중국 대륙을 휩쓴 무시무시한 불교 탄압의 칼날에서 중국 선종을 살아남게 했다. 선종 스님들은 스스로 땀 흘려 일한 양식으로 살아감으로써 '승려란 사회에 기생하는 존재'라는 권력자의 시선을 피해가게 했다. 육체노동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나눔으로써 대중과 유리된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얻은 것이다.

프랑스 가톨릭 수도원에서 수행했던 경험과 최근의 생각을 담은 책을 얼마 전 펴낸 갓바위 선본사 향적 스님은 '동서양 종교의 본질은 같고 모든 종교는 대자연과 소통하고 대중을 위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수도원의 규칙과 백장청규의 가르침은 다르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종교는 청빈할 때 비로소 대중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을 뽑는 선거가 내주 열린다. 전국 3천여 사찰, 1만3천여 명의 스님을 대표하는 불교계 최고 지도자의 자리가 총무원장이다. 선거를 앞두고 불교계 일각에서 한 조사 결과 차기 총무원장에게 기대하는 덕목으로 '대사회 소통 능력'이 먼저 꼽혔다. 승려의 도덕적 권위를 확립하는 한편 사회 원로로서의 역할을 해달라는 기대다.

불교계는 이번 선거를 두고 공명 청정을 강조한다. 조계종 종단 지도자를 뽑는 일에서 나아가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인 만큼 선거 과정은 맑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선거 관행으로 빚어진 아픔과 슬픔을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다행히 이번에는 선거 과열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존경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갈망하는 마음이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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