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윤옥 옮김/문학동네 펴냄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여기서 '1Q84'는 '일큐팔사'로 읽어야 한다. 조지 오엘의 소설 '1984'에 빗댄 이 제목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984년을 의미하는 동시에 '현실 속의 또 다른 현실'(Parallel World)을 말한다. 현실 속의 또 다른 현실은 '달이 두 개 떠 있는 세상'이며 묘하게 제 정신이 아닌 세상이다. 하루키는 이 제정신이 아닌 세상을 두고 'Question'의 Q를 사용, 1Q84라고 부른다.
달이 두 개인 세상이니 이미 '루너틱(lunatic-미친, 제 정신이 아닌, 이상한.)' 세상이다. 루너틱은 '달의 영향을 받은' 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는데, 옛 사람들은 달의 영기(靈氣)에 닿으면 사람이 미친다고 믿었다.
하루키의 소설 '1Q84'에는 두 가지 세상이 존재한다. 이른바 '패러럴 월드'(Parallel World)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달이 하나인 '1984년'속에서 살고,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 아오마메와 남자 주인공 덴고는 달이 두 개인 '1Q84년' 의 현실에 산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이 두 개의 현실을 대등하게 오고간다. 그래서 '현실 속의 또 다른 현실'이다.
어쨌거나 '1Q84'는 제 정신이 아닌 세상이고, 당연히 덴고와 아오마메 역시 제 정신이 아니다. 아오마메는 스포츠 클럽 마셜아츠 인스트럭터로 스트레칭을 가르치거나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모태 신앙 '증인회' 신자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이제는 가정 폭력의 가해자(폭력, 성폭력)를 비밀리에 살해하는 인물이다. 남자 주인공 덴고는 한 살 때 꿈인 듯 목격한 엄마의 불륜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학원 수학 강사이자 소설가 지망생이다.
소설은 아오마메와 덴고의 입장에서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아오마메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살해하고, 덴고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남이 쓴 소설을 리라이팅(문장을 다듬어 가며 다시 쓰기)해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데 일조한다.
달이 두 개인 '1Q84'에는 온갖 병적인 인물들로 가득하다. 10살 난 제 딸을 성폭행하고, 그것을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아버지이자 종교집단 '선구'의 리더, 아내를 죽도록 두들겨 패는 남자, 그런 남자들을 죽여 버리라고 요청하는 노부인, 그 요청을 받아 남자들을 살해하는 아오마메, 한 살 때 제 어머니의 불륜 장면을 목격한 덴고, 그때 어머니가 입었던 하얀 슬립을 생각하며 열 살 연상의 유부녀 애인에게도 하얀 슬립을 입어달라고 요청하는 덴고, 하룻밤 즐길 남자를 찾기 위해 걸핏하면 카페를 찾아가는 여자 경찰….
달이 두 개나 있는 세상에 대해 워낙 진지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곳을 하루키가 만든 또 다른 가상 세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하루키의 기술일 뿐이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분명하게 달이 두 개로 보인다. 하루키는 정신 이상자들의 정신세계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달이 두 개라고 믿는 아오마메는 종교 집단 선구의 지도자를 살해하고, 죽기 전 선구의 지도자가 '너도 죽는다'는 말을 이기지 못해 고속도로에서 총을 입에 물고 자살해버린다. 그녀는 도망칠 곳이 없고, 살아날 방법이 없다고 믿고 있다. 소설에서는 그 장면이 피할 수 없는 현실처럼 묘사되지만 하루키의 의도는 분명하다. 어떤 이유에서건 백주에 고속도로에서 총을 물고, 뇌수를 터뜨리며 자살한다면 그것은 미친 짓이다. 하루키는 어디로도 피할 곳이 없다고 믿는 '사이비 종교인'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장황한 이야기, 다소 복잡해 보이는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달이 두 개거나 말거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세상이 내일 곧 망할 것 같으냐?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라. 세상이 망하기 전에 네가 먼저 죽는다. 네 앞가림이나 제대로 해라. 수혈해서 지옥에 떨어지기보다 청정한 몸과 영혼으로 죽어서 낙원으로 가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웃기지 마라. 종교에서 위안을 찾지 말고 희망과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 혹은 그 무엇을 찾아라. 그것이 찰나의 기억이라도 상관없다. 그런 기억 하나로 사람은 스스로 위로하며 사는 것이다. 달이 두 개로 보이거든 정신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라.
사이비 종교집단 '선구'와 대결할 것처럼 펼쳐지던 소설은 다소 허망하게 끝난다. 한바탕 '전쟁'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하루키가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도 피 튀는 싸움터도 아니다. 정의와 불의의 한판 승부도 아니다. 하루키는 병적인 일본 사회를 우려하고, 병적인 현대인을 걱정했다. 더불어 이 병적인 상태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이비 종교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는 것이다.
아마도 하루키에게는 종교적 이유로 일본 지하철에서 사린가스를 뿌렸던 '옴진리교' 사건이 분명하게 각인돼 있는 모양이다. 종교집단 선구의 리더로 자신의 10세 된 딸을 강간하는 모습, 그리고 결국 파멸로 치닫는 모습, 어릴 때 '증인회' 신자로 골수 깊은 곳까지 종교 교리에 물든 아오마메 역시 파멸한다는 설정은 사이비 종교에 대한 하루키의 시선이다.
'사이비 종교인'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그 죽음 앞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며 기도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 '사이비적'이다. 이에 반해 비록 '1Q84'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불행한 과거, 불행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인정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남자 주인공 덴고는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두 권 모두 두꺼운 책이지만 흡인력이 뛰어나 얇게 읽힌다.
1권, 2권. 각권 1만4천8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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