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로 출장갈 일이 있었다.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지루하고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나 20년 전 25시간 걸리던 것을 생각하면 문제도 아니었다. 이번 출장지에 지난날 유학길을 떠나던 때 목적지였던 장소가 포함되어 있어 감회가 새로웠으나, 주민 요구를 지역 개발 정책에 반영한 사례를 보기 위한 여행길이었다.
마인츠는 프랑크푸르트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구텐베르크의 고장이다. 인구는 30만 정도이고 마인과 라인의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한 이곳은 포도 농사를 주로 짓고 있으며, 로렐라이 전설로 유명하다. 부자 도시거나, 국제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지 않아도 교육 환경이 좋아서 살기 좋은 도시로 생각되었다. 다양한 보육 지원 체계를 가지고 있고, 공교육에 대한 주민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의 특기 교육을 시키고자 할 때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도심으로 나와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때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넉넉한 버스에는 유모차 전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는 운전기사와 서로 돕기를 즐겨하는 승객들이 있어 마음 졸일 필요도 없다.
슈투트가르트는 벤츠 자동차로, 헤겔을 비롯한 지성인들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만 바람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친환경 도시이다. 규모가 큰 기업들보다는 중소기업이 더 많은 이곳의 상황은 대구와 비슷하다. 외국인 노동자가 특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들을 위한 집중주거지보다는 원주민과 함께하는 통합주거단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 기반 유지라는 실질적 목적을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통합적 이주민 수용 정책과 안전하고 가족친화적인 지역사회 환경 조성으로 살기 좋은 도시의 명성을 얻었다. 재정 형편이 좋아 보육 등을 위한 지원이 넉넉한 이 도시에서의 직장보육시설 설치, 운영을 위한 컨설팅 프로그램은 단연 돋보였다. 공공 디자인이나 도시 문화에 있어서도 인프라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도심을 현대적으로 조성하면서 전통적인 공간과의 조화를 유지하고 있는 도심 광장에서는 가족 단위로 거닐거나 거리 음악회 등을 즐기는 장면들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쾌적하고, 여유로우며, 다양함이 어우러진, 활력 있는 이곳이 살기 좋은 도시임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세계적인 맥주 축제(Oktoberfest) 전야제가 열리던 날 뮌헨 시내 거리는 사람들로 물결을 이루었다. 바이에른의 주도로서 고유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환경을 자랑하고 있는 뮌헨이지만, 20여 년 전에는 활력을 잃어 가는 도시를 되살리기 위해 고민해야 했다. 활기찬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도입한 전략은 다름 아닌 주민에 의한 도시 개발이었다. 뮌헨시의 장기발전계획(Perspective Munchen)은 철저하게 주민 요구 중심으로 수립되어 있다. 남녀노소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가 마련되어 있으며, 계획의 진행 과정을 주민 스스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맥주 축제를 보기 위해 몰려든 수백만의 관광객들과 바이에른의 전통 의상을 입고 도심으로 나와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흥에 취해 있는 모습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욕심을 내어 이곳저곳 다니면서 보고 왔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개인 각자의 삶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었다. 동행한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촬영할 수 있도록 사전에 한 초등학교에 협조를 요청했을 때, 교장은 전체 학부모 회의를 열어 부모들의 허락을 받아두었다. 갑작스레 찾아간 보육시설 원장은 급히 부모들과 연락을 취해 동의를 얻으려 했으나 몇몇 부모와 닿지 않아 허락을 모두 받은 제한된 그룹에서만 촬영할 것을 제안했다. 배려와 존중의 마음은 고화질 필름으로는 소개할 수 없겠지만,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라고 본다.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가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살기 좋은 도시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요구와 조건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상식이 통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0년간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느껴왔던 생각이다.
이미원 대구경북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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