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송이 영하 50℃ 급랭 보관…사시사철 채취때 맛·향 그대로
수십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 숲 아래 고고하게 돋아나는 송이. '송이 맛을 보고 가을을 논하라'고 할 만큼 송이는 이맘 때면 꼭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서도 입에 오르내리는 우리나라 가을철 음식의 백미다. 경북 도내 영덕과 울진, 영양, 청송, 안동, 의성, 봉화, 문경 등지에서 많이 나지만 누가 뭐라해도 봉화산 송이를 으뜸으로 친다. 그 만큼 맛과 향이 대단하다는 뜻. 추석 전후로 잠깐 나고 말아 귀하디 귀한 송이는 보통 ㎏당 20만원 선이면 괜찮은 상품을 구할 수 있으나 올해는 무려 80만원을 호가한다. 사상 최고치다. 갓이 펴 버린 하품도 ㎏에 35만원이다. 기온이 높고 가을 가뭄이 계속돼 송이가 나지 않는 데다 면역력을 높이는데 좋다는 소문과 추석선물 시즌이 겹치면서 송이 한 톨 값이 8만, 9만원. 금값이다. 품질로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산 송이. 한식 세계화에 나선 우리음식 전문가들은 한식 최고의 품격을 창출해 낼 수 있는 특급 식자재로 주목하고 있다.
◆천하일미의 봉화 돌솥 송이덮밥
지난 30여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손님상에 송이돌솥밥을 내는 곳이 있다. 올해처럼 송이가 금값인데도 이곳에선 송이밥을 짓는다. 봉화읍에서 닭실마을을 지나 울진방면으로 약 5㎞쯤 가다보면 다덕약수터를 못미쳐 우측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는 나즈막한 한옥집. 바로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깨끗하고 맛있는 집' 봉화 용두식당이다. 전국에 소문나 있는 이 집은 미식가들의 잦은 드나들기로 식당 문지방이 반들반들 다 닳았다. 그래서인지 집보다 주차장이 더 넓다. 식당 창업주인 양순화씨가 엄태항 봉화군수로부터 받은 송이요리경진대회 최우수상 상패도 걸려 있다.
"송이차예요. 한번 마셔 보시죠." 들어서자 마자 주인 구윤임(44)씨가 송이차를 낸다. 입안에 송이향이 가득해진다. '어떻게 송이향을 진하게 우려내느냐'는 질문에 송이를 깨끗하게 다듬은 뒤 끓는 물을 부어 향을 우린다고 한다. 삶으면 향이 달아나고 뜨거운 것 보다 차게 해서 마셔야 송이의 제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단다. 이어 100% 유기농으로 생산한 제철 야채 겉절이부터 미리 상에 올린다. 숙주나물에서부터 애호박볶음, 머윗대, 오이, 참나물, 가지, 박나물, 고추 등 갖가지 채소무침에다 매실장아찌, 표고무침, 묵산나물, 된장찌개까지 모두 열일곱가지다. 반찬엔 마늘을 쓰지 않는다. 마늘의 강한 맛이 송이의 향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이향을 살려내는 것은 물론이고 산나물은 산나물 맛을 지키고, 애호박은 애호박 맛이 나도록 식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내 상에 올리는 게 이 집만의 특징이다.
송이 돌솥밥 뚜껑을 여니 기대한 그대로다. 말이 필요없다. 모락모락 김과 함께 피어오르는 밥상 가득한 송이향이 가히 30년 전통을 대변한다. 다들 송이향에 취했나. 조용하기만 하다. 쌀을 불려 놨다가 밤, 대추, 은행, 감자, 당근, 속청, 완두, 참깨 등 오곡과 같이 돌솥에 넣고 찬물로 밥물을 맞춘 다음 불에 올린다고. "송이는 얇게 썰어놨다가 손님상에 내기 직전 밥 위에 얹어 1분간만 뜸들여서 곧장내야 해요. 그래야 송이향이 그대로 살아 있지요" 손님상 뒤쪽에서 웃고만 있던 주인은 송이밥 짓는 요령을 설명한다. 보통 1인분에 송이 2개 반이 들어간다고. '특' 일 경우 3개 반 정도가 밥 위에 올려진다. 맛있게 먹는 방법은 먼저 참기름 소금을 송이 위에 얹고 밥에 조금씩 비벼 먹어야 송이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한참 먹다가 남은 밥에다 갖은 나물을 넣고 된장으로 비비면 그 또한 맛이 일품. 이집 특미인 능이밥도 진미다. 송이밥과 달리 능이는 버섯을 불린 쌀과 함께 넣고 밥을 짓는다. 익혀도 특유의 능이향이 그대로 살아있어 막 비벼 먹어도 괜찮다. 송이밥 1인분에 1만5천원, 능이밥은 1만원이다. 금값 송이에 비하면 싼 편이다.
◆한식세계화 식자재로서의 가치
송이버섯을 좋아하는 나라로는 한국, 일본, 중국, 홍콩으로 그 중 일본에서 송이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산과 북한산은 수입 판매 기간이 열흘 정도 걸리기 때문에 갓 부분이 거무스름하고 향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 송이는 향이 짙고 갓과 자루에 흙이 묻어 있으며 조직을 갈라보면 뽀얀 유백색을 띤다. 7㎝쯤 되는 작달막하고 통통하게 갓이 피지 않고 동그랗고 단단한 송이에 높은 등급을 매긴다. 최적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백두대간에서 채취되는 우리 송이는 일본산 송이에 비해 수분 함량이 적어 살이 단단하고 영양분이 풍부해 세계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우수한 식재료인 우리 송이를 일년내내 지속적인 소재로 한식세계화에 접목시킬 가능한 방법은 없을까? 답은 용두식당에 있다.
가을 한철, 그것도 추석전후 잠깐 동안 나고 말아 귀하디 귀한 송이를 소재로 용두식당 주인 구씨가 어떻게 연중 꾸준히 송이밥을 낼 수 있을까? 철저한 '송이 관리'에 있다. 제철에 난 송이를 영하 50℃ 이하에서 급랭시켜 보관하고 있기에 맛과 향이 채취 당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냥 가정 냉장고에다 얼리면 향이 사라지고 질겨지는데 영하 50℃에서 급랭시키면 질겨지지도 않는다는 것도 구씨가 독자 개발한 식자재 보관기술이다. 때문에 겨울, 여름 가릴 것 없이 송이밥을 낼 수 있고 연중 전국의 미식가들을 유혹할 수 있다. "소나무 송이와 참나무 능이는 여타 버섯과는 달리 모두 살아 있는 나무에서 나는 버섯이라서 뛰어난 맛과 향은 물론이고 그 약효까지 대단한 것 같다"고 한 구씨는 "순백색의 송이와 진한 검은색의 능이는 흑백의 한국 음식 색감을 잘 그려낼 수 있는 음식코디 식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고 말한다.
송이밥에 쓰는 버섯은 이른바 '애기송이'다. 땅 밖으로 나오기 전 채취꾼들에게 발견된 땅속 '꼬마송이'로 손가락만 하지만 송이밥을 해내는데는 크기가 맞춤이다. 땅속에서 그대로 캐내서 맛이 부드럽고 향이 더 진하지만 자라다가 만 송이라서 '정지품'으로 상품에 비해 값이 절반 정도로 싸다. 이를 집중 매입해 급랭시켜 두고 연중 쓴다. 송이값이 폭등해도 식당운영이 안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름송이는 값이 싸지만 무른데다 향이 덜하고 벌레가 많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건강 기능성 약선음식은 송이가 1등
한식세계화의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 있는 농촌진흥청 연구 자료에 의하면 송이는 단백질(아미노산), 섬유질 및 비타민과 무기질이 비교적 많이 함유되어 있고 유리 아미노산은 핵산과 함께 버섯 특유의 감칠 맛에 관여하는 풍미 성분의 하나로서 영양학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약리적인 효능도 갖고 있다. 섬유질이 많아 변비에도 좋은 송이를 섞어 밥을 지으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 되는데, 이는 송이에 강력한 소화효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비타민 B1, B2는 물론 비타민D가 많아 뼈 건강에도 좋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며 지방 함량은 적은 반면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성인병 예방에 좋다. 그래서 성장기 자녀와 수험생 등 온가족 모두에게 다 좋은 식품이다. 특히 송이에는 위암, 직장암의 발생을 억제하는 크리스틴이라는 항암성분이 함유되어 있고 종양 저지율이 91.8%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무독하며 맛이 달고 향이 짙다. 소나무에서만 기생하며 산중 오래된 소나무 아래에서 소나무의 기운을 품고 자란다. 나무에서 나는 버섯 중 으뜸이며 위의 기능을 돕고 식욕을 증진시키고 설사를 멎게하고 기를 더하여 준다'라고 동의보감에 쓰여 있는 송이는 예부터 한방에서는 소변이 탁한 것을 치료하며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염증을 치료하는 약용으로 사용할 정도로 약선음식 재료로서는 1등으로 꼽는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송이를 명나라 사신에게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송이는 예나 지금이나 진귀한 식재료임에는 틀림없다. 아직까지 약용식품으로서 가치가 있는지는 의학적으로 분명한 연구결과가 나와 있지 않지만 앞으로 연구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약용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한식, 그 중에서도 밥과 어우러지는 약선음식 식재료로서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한식 조리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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