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니어클럽, 노인일자리 사업 성과…전국서 벤치마킹
23일 달서구 감삼동 '토이앤시니어' 사업장. 장난감 천지다. 색색 블록과 플라스틱 자동차, 학습 교재용 미니 가구까지 온갖 장난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곳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일하는 장난감 세척·소독 공장. 9명의 어르신들은 수세미로 정성스레 장난감을 씻고, 스팀기로 소독한 뒤 무공해 항균살균제를 뿌리고 마당 자연건조대에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혜경(70·여) 어르신은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뿌듯하다"고 환히 웃었다.
토이앤시니어는 2006년 달서시니어클럽이 발굴한 사업이다. 시장형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기획돼 말 그대로 시장성을 입증하고 있다. 류우하 관장은 "신종플루 때문에 정신없이 일감이 밀려드는 중"이라며 "요즘 한 달 매출(800만~1천만원)은 지난해 배 수준"이라고 했다.
2007년 출범한 '두두콩나물사업단'은 수성시니어클럽이 발굴한 지역 최초의 노인 '사회적 기업'이다.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적 목적 실현에 가치를 둔다.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출발한 뒤 2008년 사회적기업으로 재탄생한 두두는 수성구 어르신들이 연호동 생산공장에서 직접 재배한 콩나물을 지역 주민들에게 곧바로 공급하는 로컬푸드 지향형 일터다. 직원 17명 중 9명이 60세 이상 어르신. 올 3월 친환경농산물 무농약 콩나물 인증에 이어 4월에는 ISO9001(품질경영) 인증까지 획득했다. 수성시니어클럽 서지영 담당은 "어르신들은 콩 선별부터 재배, 포장, 배송까지 전 과정에 걸쳐 파트 타임으로 일한다"며 "지역 어르신들이 지역 바른 먹을거리 운동을 직접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내년이면 출범 10년째를 맞는 대구 노인 일자리 사업이 결실을 맺고 있다.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으로 맹활약한 대구 7개 시니어클럽은 초기 공공근로형에 머물렀던 사업을 교육·복지형, 시장형으로 다양화해 전국 최고 반열에 올라섰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을 앞두고 대구 노인 일자리 사업 9년을 되돌아 봤다.
◆일하는 기쁨! 브라보 시니어!
2년 전 나이 여든에 다시 일을 시작한 박재규 어르신. 달서시니어클럽 복지형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교직 은퇴 후 20여년 만에 '홀몸노인 안전 지킴이'이라는 새 직업을 얻었다. 매주 3일씩 거동이 불편한 3명의 홀몸노인을 찾아 말벗이 되어주고 있는 어르신은 "달서구 송현동 집에서 상인동 홀몸노인 집까지 45분을 꼬박 걸어가 다시 걸어서 돌아온다"며 "친구도 얻고, 봉사도 하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고 미소지었다.
김만호(78)·노낙주(67) 어르신은 달서구시니어클럽이 교육형 일자리로 기획한 '전통예절 교육 사업단'동기생이다. 대구시내 어린이집을 찾아 공수, 절하는 법, 경례, 반듯한 몸가짐과 존댓말을 가르친다.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곧잘 따라할 때, 부모님께 칭찬받았다고 자랑할 때 아이처럼 기쁘다"며 "입시 위주 교육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사람다운 사람을 키워낸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시니어클럽은 보건복지가족부가 지정한 국내 유일의 노인일자리 전담 기관이다. 대구에서는 2001년 중구부터 출발해 올 4월 서·북·동구까지 달성군을 제외한 7개구에 시니어클럽이 들어섰다.
대구 시니어클럽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전국 최고로 평가받는다. 올 3월 보건복지가족부가 16개 시·도 53개 시니어클럽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도 사업평가에서 A등급 2곳(중구, 수성), B등급 2곳(남구, 달서)으로 전국 최고 성적을 거뒀다. 현재 7개 대구 시니어클럽을 통해 일자리를 찾은 대구 어르신은 모두 3천471명(86개사업단). 주유소, 농촌 일손돕기, 교통 지도, 골목 청소 등 단편적 활동 위주였던 과거와 달리 숲생태 및 문화해설사나 떡방, 가전제품수리, 세차, 택배, 간병, 베이비시터 사업 이르기까지 전문 지식을 활용하거나 소규모 사업을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자체 수익 창출을 지향하는 지속적 일자리로 다양화되고 있다.
◆더 일하고 싶어요!
보건복지가족부 국비 지원과 지자체 매칭펀드에 의존하는 시니어클럽 노인일자리 사업은 일할 수 있는 인원과 시기가 한정돼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예산 범위에 맞춰 해당 연도 일자리사업 인원을 미리 산정하고 이후 1년 12달 가운데 7개월, 주 3일 하루 4시간씩 근로 시간을 제한한다. 한 달 월급도 일자리에 상관없이 20만원으로 동일하다. 월급을 낮추는 대신 보다 많은 노인들에게 일자리 혜택을 나누자는 취지. 자체 수익을 창출하는 시장형이 아니라면 모든 일자리 사정이 엇비슷하다.
이렇다 보니 더 일하고 싶다는 어르신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예산 문제 때문에 7개월밖에 일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나머지 5개월도 더 일하고 싶어 한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달서시니어클럽 류우하 관장은 "세계 금융 위기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일자리 신청 대기자가 넘쳐나고 있다"며 "정부는 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보다 많이 일하고 보다 많은 월급을 줄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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