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운문령~가지산~운문사

입력 2009-09-17 14:54:31

영남알프스 비경 능선따라 '눈앞에'

한국에서 '알프스'를 차용하고 있는 산은 줄잡아 10여 곳에 이른다. 대관령, 충북알프스, 영남알프스 등과 소백산의 일부 산군(山群)들이 한국의 알프스를 자칭하고 있다.

일본도 중부산악지대의 골격을 이루는 남북알프스를 대표적 트레킹코스로 만들었고, 묻어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중국도 쓰촨(四川)성 쓰꾸냥산(四姑娘山)에 알프스브랜드를 도입했다. 알프스의 상징은 무엇일까. 아마도 유럽대륙을 망라하는 광활한 면적과 때묻지 않은 자연 즉, 청정성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 어딜까. 시비를 가리자는 것은 아니지만 27산, 10봉, 3령(嶺)이 펼쳐져 있다는 영남알프스가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한강 이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군이라는 영남알프스는 7개 준봉이 가지산을 기준으로 좌우로 이어져 있다. 가지산을 중심으로 상운산~운문산~억산 능선을 북알프스, 배내고개를 기준으로 간월~신불-영취산 능선을 동(東)알프스, 재약산~천황봉~향로봉 능선을 남알프스라 부른다. 이 중 가지산은 맏형 격이다.

일단 높이 면에서 전체 봉우리들을 아우르고 산군들을 동서로 다시 남북으로 가르는 중심축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가지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다양하다. 석남사, 운문산휴양림, 운문령 등 취향대로 코스를 잡을 수 있다. 취재팀의 등산로는 운문령으로 잡았다. 산 정상까지 임도가 뚫려 쾌적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기 때문. 운문령은 해발 730m로 청도와 밀양과 울주를 경계 짓는 고개다. 운문령에서 중간기점인 상운산까지는 도로가 뚫려 있다. 임도를 따라 오르는 산행도 특별한 운치가 있다. 우선 돌이며 나무의 방해에서 자유롭고 노폭이 여유가 있어 쾌적한 도보산행이 가능하다.

◆가지산 중심 7개 준봉 좌우로 연결

운문령~가지산 등산로는 가족, 친구, 연인들이 오르기에 적합하다. 산 아래 조망을 바라보며 나누는 '산상대화'는 일행을 더욱 화목케 할 것이고 사방으로 펼쳐진 산너울을 바라보며 나누는 숲 속 데이트는 커플의 연대를 깊게 할 것이다.

임도라고는 하지만 경사각은 등산로와 다르지 않으니 산을 오르는 수고는 일반 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임도 끝자락에서 일행을 먼저 반기는 건 귀바위. 부처님의 귀를 닮은데서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부처가 영남알프스 중앙에 우뚝 귀를 세우신 뜻은 무엇을 듣고자함일까.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청량한 임도는 계속된다. 귀바위에서 20여분 거리에 상운산이 있다.

운문, 상운의 이름이 유래하듯 운문령~가지산 등산로는 안개와 구름의 변화가 다양하다. 구름은 스카이라인과 어울려 조망을 보태고 운 좋게 안개라도 만난다면 모처럼 환상적인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다다른다. 조망이 트이며 큰 바위가 시선을 가로 막는다. 왼쪽 옆 쌀눈자리가 패인 것을 보니 한눈에도 '쌀바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일본 아소(阿蘇)산에서 보았던 미총(米塚)과 많이 닮아 있다.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 민초들은 자연물에 '쌀'을 투영시켜 시각적으로나마 허기에서 벗어나려고 했을 것이다.

◆신불산 공룡능선'재약산 산너울 한눈에

쌀바위 바로 밑자락엔 생수터가 자리 잡고 있다. 흙이라곤 한줌도 없는 바위틈에서 어떻게 물길을 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돌 틈으로 쌀을 내려주던 부처님이 이젠 물로 그 자비를 잇고 계신 듯하다.

쌀바위 약수에서 수통을 가득 채우고 가지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알프스의 맏형답게 가지산은 정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정상부근 잠자리 떼들의 비행이 일행을 반기는 듯 하더니 가지산 정상석이 시야에 들어왔다. 알프스 최고봉답게 역시 최고의 조망을 갖추고 있었다. 동쪽으로 신불산, 간월산 공룡능선이 신록 속에 아득하고, 오른쪽으로는 천황산, 재약산이 길게 산너울을 드리웠다. 배내골 계곡을 따라 펼쳐진 들녘에선 곡식들이 열매를 키워가고 있다.

조망에 팔려 땀이 식어갈 무렵 '아이스케키통'이 눈에 띄었다. 두 젊은이가 정상까지 20kg이 넘는 통을 메고 올라왔다고 한다. 급한 대로 하나 받아 물고 가격을 물으니 2천원 이란다. 순간 씁쓸(?)했지만 그들의 발품을 생각해 지갑을 연다. '산 밑' 가격과의 차액은 젊은이들의 '땀 값'이려니 한다.

사방 조망을 카메라에 담고 하산 길을 재촉한다. 30분을 걸어 헬기장을 지나 '전망대 바위'에 오른다. 영남알프스의 웅장한 스카이라인을 조망하기로는 이곳이 최고다. 먼저 와서 자리 잡은 젊은 팀들의 유쾌한 수다가 계곡을 따라 메아리친다. 극성스런 친구들이 아찔한 절벽위에 엎드려 사진을 찍으며 스릴을 즐기고 있다. 모험은 젊음의 특권이니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볼 뿐. 비경에 스릴까지 더해졌으니 저들의 오늘 감동과 추억은 오래도록 각인될 것이다.

◆원시 풍경 자랑하는 심심이골 트레킹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피해 아랫재로 하산을 서두른다. 아랫재에서 치달아 오르면 운문산, 억산을 거쳐 구만산에 이른다. 취재팀은 운문산행을 접고 아랫재에서 원시 비경을 자랑하는 심심이골로 방향을 잡는다. 이 곳은 오랫동안 인적을 들이지 않은 탓에 원시의 풍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이름도 심심이골(深深谷)로 불리는가? 하늘까지 덮은 울창한 수림 덕에 모자나 햇빛가리개를 벗어도 될 정도. 두 시간여 트레킹이 끝나면 사리암을 거쳐 운문사에 이르게 된다.

오늘 취재팀은 영남알프스 전체 산군 중 2산, 1령, 1재를 거쳐 왔다. 아직 25산, 10봉, 2령이 남았으니 영남알프스의 규모가 가늠된다. 이제 지축(地軸)을 기울인 지구가 영남알프스에 가을바람을 보내면 27산은 곧 억새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올 가을엔 잠시 짬을 내 억새의 향연에 꼭 동참하시길. 천성산, 간월'신불산, 재약산 사자평을 추천한다.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가지산코스, 시외버스로 연결돼요

대구남부시외버스정류장에서 '언양행-삼계리'(오전 7시 20분) 버스를 타고 운문사를 지나 운문산휴양림이나 운문령, 석남사에서 내려 가지산으로 오르면 된다. 정상 등정 후 아랫재-심심이골-운문사를 거쳐 운문사정류장에서 오후 3시50분 대구행 버스를 타면 된다. 단 운문사에서 가지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2011년까지 입산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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