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어 주는 손수레…나의 최고 효자지요"

입력 2009-09-11 09:45:42

폐지 줍는 '호호 할머니' 동행 체험 해보니

본사 사회부 기획사건팀 임상준기자가 김순희 할머니의 폐지 줍는 일을 도우며 현장체험을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본사 사회부 기획사건팀 임상준기자가 김순희 할머니의 폐지 줍는 일을 도우며 현장체험을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등줄기를 타고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뙤약볕에 얼굴이 발갛게 익었다. 전봇대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신문지, 종이박스, 빈 병을 골라낼 때마다 쓰레기 더미에서 나오는 악취에 숨쉬기가 힘들다. "기자 양반 힘들어서 어쩌누…." 김순희(75·대구 달서구 진천동) 할머니는 가마솥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슈퍼마켓, 상가, 전봇대를 누비며 폐품을 주워 날랐다. 할머니 총총걸음만큼이나 바쁜 손놀림 덕분에 폐품 수집 3시간 만에 손수레 가득 폐품이 쌓였다.

"내 구역은 다 돌았어. 사람이 너무 욕심내면 안 돼."

고물상으로 향하는 길. 할머니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오늘은 운이 좋아. 파지보다 값이 더 나가는 헌 옷을 많이 모았어. 옷은 1㎏에 450원, 신문은 130원, 파지는 110원…." 할머니는 ㎏당 폐품 가격을 줄줄 꿰고 있다.

할머니에게 손수레는 성역이다. 몇 번이나 수레를 끌겠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연방 손사래를 친다. 셋째 아들(42)이 4년 전 12만원을 들여 맞춰 준 보물 1호다. "손수레만한 효자가 없어. 돈도 벌어주고 다리도 돼 주거던. 나한테는 손자·손녀 다음으로 소중해." 손수레를 놓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는 할머니와 수차례 실랑이 끝에 겨우 손수레 뒤를 밀 수 있었다.

할머니는 8년 전부터 폐품을 주웠다. 큰아들의 사업 실패로 지금 살고 있는 보증금 2천만원에 월 20만원 주택(33㎡)으로 옮겨오면서부터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줄곧 가난의 멍에를 짊어져야 했다. 19세의 나이로 세살 연상인 할아버지를 만나서도 가난은 계속 따라다녔다. 26년 전 할아버지는 약 한번, 병원 진찰 한번 받지 못하고 집에서 피를 쏟고 돌아가셨다. "무슨 병인지도 몰라. 기침하다 영감이 죽었어."

할머니의 별명은 '호호 할매'다. 질긴 가난도 할머니의 웃음꽃은 꺾지 못했다.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모습에 주민들이 지어준 애칭이다. 웃음 덕에 폐품 줍는 일도 한결 수월해졌다. 할머니의 웃음에 반한 주민들이 폐지를 따로 버리지 않고 할머니 집 앞에 가져다 놓는다.

웃음의 비결은 가족이다. 전에는 관상을 보는 사람이 웃는 얼굴에는 밥이 붙는다고 해서 매일 웃었지만 지금은 손자 손녀가 행복이다. 큰 손녀 진희(가명·20)는 충청도 한 대학에서 교사의 꿈을 키우고 있고, 고3 손자 강희(19)는 총명한데다 인물까지 훤칠하다고 자랑한다.

20여분이 흘러 동네 고물상에 도착했다. 할머니의 예상대로 전자 저울 바늘은 60㎏을 넘었다. 5천740원. 하루 평균 3천, 4천원의 수입에 비하면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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