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옷을 맞춰? 옷이 사람을 바꾼다!

입력 2009-09-05 08:00:00

유니폼, 그 밝음과 어둠의 색

우스갯소리 하나. '군복 등쪽에 잡는 줄은 두 줄만 허용, 팔에도 두 줄만, 가슴팍에도 여러 겹으로 줄을 잡아선 안 된다. 전투화는 마음껏 광이 나게 닦아도 좋다.'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귀에 박이도록 들었을 법한 복장 규정 가운데 하나다. 똑같이 짧은 머리, 똑같은 옷. 계급장 막대기 수만 다르지,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이런 모습으로 2년여를 군대에서 보내야 하는 젊은 장정들에겐 통일된 규정이 달갑진 않을 터. 이 때문에 한창 개성을 뽐내고 싶어하는 20대 초반의 군인들에겐 이런 것들도 '짬이 차면' 소귀에 경 읽기로 바뀐다. 두 줄만 잡으라는 것도 세 줄, 네 줄 잡고 전투모도 남들과 다르게 뒤집은 'U'자 형으로 만들어 한껏 멋을 내본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나.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군복을 입으면 다 같은 군인인 것을.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남성 2위가 군인, 1위가 민간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을 정도니 말이다.

우스갯소리 둘. 반면 제 아무리 혈기왕성한 젊은이라도 속칭 '개구리복', 예비군복만 입혀 놓으면 무질서의 극치를 달린다는 농담이 나오는 곳이 바로 '예비군 훈련장'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7년간 받게 되는 예비군 훈련. 하지만 희한하게도 무사히 군복무를 마친 예비역들도 예비군 훈련장에만 들어서면 자세가 180도 바뀐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다니는, 입수보행은 당연지사. 전투모, 허리띠는 주머니 속에 박혀 있기 일쑤다. 2년 이상 쏟은 젊음에 대한, 혹은 거꾸로 신은 애인의 고무신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옷만 입으면 '오합지졸'로 변한다. 이 때문에 '개구리복의 위력'이라고까지 표현되는 게 예비역들의 유니폼, '국방향'이 솔솔 풀기는 예비군복이다.

※유니폼(Uniform)이란?

라틴어에서 하나를 의미하는 우누스(Unus)와 형태를 의미하는 포르마(Forma)의 합성어. 일정한 형식으로 된 의복을 뜻한다.

통일된 옷이라는 의미의 '유니폼'. 유니폼은 개인이나 집단을 다른 사람이나 집단으로부터 구별한다. 심지어 집단의 이미지나 특성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제작, 사용되기도 한다. 군인들의 군복이 대표적인 사례. 유니폼은 소속된 집단의 정체성이 나타난 만큼 입은 사람의 의식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앞서 우스갯소리로 나오기도 했지만 유니폼은 한 개인이 집단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나타내 개성을 억압한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한 국가의 대표적인 전통의상도 일종의 유니폼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특정집단의 소속감을 높이는 데 이만한 것도 없다.

대표적인 사례로 올해 초 있었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회에서 객관적인 열세라는 일부의 지적에도 우리나라 대표팀은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그 기저에는 '태극마크의 힘'이 있었다. 김인식 감독을 비롯해 선수들은 하나같이 '태극마크의 자부심'을 역설했다. 실제 대한민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뒤 대표팀의 응집력은 날이 갈수록 강해져 결국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유니폼을 통해 일체감을 맛보면서 동시에 공통의 책임감과 성취감을 누린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부터 중·고생, 심지어 대학생들이 즐겨 입는 과 티셔츠까지. 우리 주변에서도 유니폼을 자주 볼 수 있다.

◆서비스 업종의 전유물이던 유니폼이 관공서까지

직장 내 유니폼이 가장 먼저 도입된 곳 중 하나가 항공사와 호텔. 서비스 업종에서 유니폼은 구성원간 업무 능률 배가는 물론 소비자 만족도까지 높여준다는 게 마케팅 업계의 정설이다. 이 때문에 서비스를 강조하는 곳에서 유니폼은 필수. 고객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고 '전문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서비스를 강조하는 관공서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에 가세하고 있다. '공무원=잿빛 근무복'이라는 공식도 종합민원실에서는 예외. 대구시내 구·군청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주민들과 접촉이 잦은 종합민원실만큼은 잿빛 근무복 대신 밝은 색상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오랜 기간 공무원의 권위를 상징해온 잿빛이 자칫 민원부서에서 딱딱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교복, "우리 애들을 구분할 수 있잖아요"

교복 자율화가 없던 1983년 전까지 우리나라 중·고생들은 모두 검은색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야했다. 남학생은 목을 조이는 호크가 달린 검은색 상·하의를, 여학생은 하얀 깃을 단 검정 상의와 통치마였다. 이는 전국 공통으로 1969년 문화교육부(현 교육과학기술부)의 중학교 평준화 시책에 따른 것. 학교별 특성을 없애기 위해 검은색 교복과 이름표, 학교 배지와 학년 마크를 단 일정한 교복 형태가 유지됐다. 교복의 영향은 머리 스타일로 고정시켰다. 남학생들은 스포츠형으로, 여학생들은 단발머리로 통일됐다.

하지만 빈부차에 의한 위화감 논란과 학교 안팎에서 교복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986년 하반기부터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교복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대구시내 학교 중 교복을 입지 않는 학교는 없다. 수학여행, 소풍 등 단체 생활을 할 때 통제해야 할 경우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방식이 복장 통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뒤섞였을 때 '우리 아이들'을 구분하기 가장 쉬운 게 바로 교복이라는 것.

하지만 대구시내 교복에 들어가는 색깔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대구시내 유명 교복 전문점에서 확인한 대구시내 중·고교생들의 교복은 천편일률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학교 간 구분이 쉽지않았다. 여름철 교복은 주로 흰색과 회색, 겨울철 교복은 주로 감색(짙은 푸른색)이 많이 들어간다는 게 특징이다. 여중생들의 경우 여름철 교복은 체크무늬 치마가 유독 많았다. 이 때문에 목 부분의 칼라와 가슴팍에 넣는 무늬, 넥타이 착용 여부 등에 변화를 줘 구분할 수 있도록 해뒀다.

◆교도소 수형복에도 구분이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한 기획특집물 중 가장 많이 나온 장면 중 하나가 사형 선고를 받은 뒤 교도소에서 찍은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이었다.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뒤 찍은 이 사진에서 김 전 대통령은 파란색 수형복에 붉은색 수번을 달고 있다. 그럼 모든 수형자들이 김 전 대통령처럼 푸른 수형복을 입고 있을까. 그건 아니다. 교도소 내에서도 엄연한 구분이 있다.

먼저 파란색과 흰색, 혹은 파란색과 짙은 파란색이 교대로 줄무늬를 이루고 있는 것은 병사에서 입는 수형복이다.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린 극중 주인공인 전은하(전도연 분)가 입고 나왔다.

황토색은 미결수들이 입는 옷이지만 모두가 이 색깔의 수형복을 입고 있는 건 아니다. 미결수들이 영치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는 옷이 있는데 점퍼 형태로 하늘색을 띤다. 정치인이나 돈 많은 이들의 재판 때 볼 수 있는 수형복. 이감할 때 입는 옷도 색깔이 다르다. 기결수들은 대체로 파란색 수형복이다.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으로 대신할 경우 파란색 수형복을 입는다. 수번 색깔도 범죄에 따라 다르다. 흰색은 일반, 파란색은 마약사범, 노란색은 요주의, 빨간색은 사형수로 나뉜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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