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애의 고전음악의 향기] 르네상스 음악의 두 거장, 프레와 빅토리아

입력 2009-08-29 07:00:00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초기 기독교 교회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초기 교회가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서 '전례(典禮)'(쉽게 말해 성당의 미사나 교회의 예배를 생각하면 된다)를 수행하는 도구로 음악을 선택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그레고리언 챈트 (Gregorian Chant·그레고리오 성가)' 라고 부르는 최초의 클래식 음악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때가 대략 5, 6세기 전후로 추측하고 있다.

이후 교회의 성장과 더불어 클래식 음악의 발전은 놀랍고도 감탄스러운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최초의 클래식 음악 그레고리언 챈트는 단성음악(monophony 모노포니·성부가 1개인 음악)이면서 아카펠라(acapella·기악 무반주)의 형태를 가진 단순한 초기음악이었다. 이후 10세기를 전후로 성부가 복수로 늘어나면서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 오늘날과 같은 4성부의 화성적인 음향구조가 들리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믿기 어려운 것은 이 시대의 음악은 우리들과 같은 일반 신자나 서민들을 위한 음악이었다기보다는 하느님과 예수님, 즉 신을 위한, 신에게 바치는 인간들의 미약한 음악적 재능의 발휘였는데, 그 작은 소망과 노력들이 오늘날의 아름다운 화음의 음악구조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27일은 르네상스 시대 교회음악의 위대한 거장, 플랑드르(오늘날의 네덜란드) 악파의 죠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 1450?~1521)가 세상을 뜬 날이다. 그리고 그전 주 20일은 스페인 출신으로 로마 악파 최고의 거장 팔레스트리나의 뒤를 이어 교황 성당 성가대를 맡았던 토마스 루이스 데 빅토리아(Tomas Luis de Victoria 1548~1611)가 세상을 뜬 날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년 전 교회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정신의 음악을 만들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마음으로 묶어주었던 것이다.

사실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음악은 조성음계의 규칙에 의한 화성법적 구조의 음악이 아니라 그리스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선법음계를 사용하는 복잡한 대위법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악이 매우 지루하고 평평한 느낌을 준다. 고전주의 음악이나 낭만주의 음악에 익숙해져 있는 귀에는 정말 따분하고 재미없는 음악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음악을 그들 시대의 규칙에 따라 조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가사의 내용(당시의 교회 음악 특히 가톨릭 음악은 거의 모두 라틴어 가사를 사용했다)을 미리 알고 나서 듣는다면 우리는 회개와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답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음악 음반도 온라인, 오프라인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 게다가 많은 이 시대의 성가 음악들이 당시의 음악적 상황을 재연하기 위해 수도원이나 성당에서 직접 녹음하는 사례가 많다.

곧 9월이 시작되고 가을이 곧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데 죠스캥 데 프레의 미사곡 'Pange lingua(내 혀로 노래하라)'나 'L'homme arme(무장한 사람)' 속으로 빠져 보면 어떨까. 아니면 스페인 사람답게 정열이 느껴진다는 빅토리아의 '레퀴엠'이나 미사곡 'O magnum mysterium(오 위대한 신비여)'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지난 여름의 들뜬 마음이나 아직 미처 정리하지 못한 여름 휴가의 뒤끝을 조용히 씻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지난 주 내용 중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는 인물은 생트 콜롱브가 아니라 마랭 마레이므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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