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공간 '식객 운암정' 정선에 진짜로 문 열다

입력 2009-08-29 07:00:00

하이원리조트 영화 세트장, 한식당으로 리모델링

수라정식(1인분 15만원)으로 절기 별미채, 참살이죽과 물김치, 별미어회, 계절 전유화, 진어별미, 오방 잡채, 궁중 신선로, 궁중요리, 진어대선, 한우구이, 절기생선조림, 진어수라, 삼진미 젓갈과 기본찬, 10년 숙성 된장조치와 진지 등으로 구성된다.
수라정식(1인분 15만원)으로 절기 별미채, 참살이죽과 물김치, 별미어회, 계절 전유화, 진어별미, 오방 잡채, 궁중 신선로, 궁중요리, 진어대선, 한우구이, 절기생선조림, 진어수라, 삼진미 젓갈과 기본찬, 10년 숙성 된장조치와 진지 등으로 구성된다.
운암정의 모습. 식당이라고 하기엔 웅장한 풍채를 자랑한다.
운암정의 모습. 식당이라고 하기엔 웅장한 풍채를 자랑한다.
인기메뉴 중 하나인 골동반.
인기메뉴 중 하나인 골동반.

'대령숙수, 성찬, 진수…그리고….'

만화와 영화에 이어 드라마로도 사랑받은 '식객'의 맛이 '운암정'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운암정'은 '식객'에서 한국 최고의 음식도장으로 묘사됐던 곳. 하지만 실체는 없었던 이곳이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위해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리조트에 세워졌던 '운암정'을 하이원리조트 측이 한식당으로 연 것. 세트장으로 쓰였던 '운암정'에서 '식객'의 맛 실현에 나서면서 새로운 미각 명소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카지노 시설인 강원랜드와 스키 및 골프 등 레저 휴양 시설 등을 갖췄던 하이원리조트는 식도락까지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급부상, 종합엔터테인먼트 리조트로 거듭나게 됐다. 특히 '운암정'은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9일까지 시범운영을 거쳐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노력도 기울였다. 지난달 10일 문을 연 이후 하루 평균 80여명씩. 지금까지 3천명 가까이 이곳을 찾았다. 104석의 좌석을 갖춘 '운암정'은 1인당 3만5천~35만원으로 만만찮은 가격임에도 정통 궁중 음식을 맛보려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운암정, 허구에서 현실 세계로

'운암정'은 허영만 작가의 만화와 영화, 드라마 '식객'에서 한국 최고의 한국도장으로 묘사된 곳이지만 허구의 공간이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 지난해 리조트 내에 지어놓은 세트장을 드라마가 끝나자 리조트 측이 리모델링, 지난달 10일 문을 열었다. 만화와 영화, 드라마에 존재하던 최고의 한식당을 현실의 세계로 이끌어낸 셈이다. 내로라하는 한식 전문가들의 수련장이었던 '운암정'. 하지만 누구나 '운암정'에 가서 한국 최고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된 것.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리조트 호수공원에 자리 잡은 '운암정'은 세계를 겨냥한 만큼 고급스럽게 꾸몄다. 드라마와 영화 속 그대로 전통 한옥 구조. 4천270㎡의 대지 위에 본 건물과 수라간, 팔각정, 정원, 연못, 장독대 등으로 구성해 고풍스럽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본관을 중심으로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다례관, 별실인 향정관과 식객관, 주방인 수라간이 자리를 잡았다. 마당에는 작은 연못인 운암지와 정자인 운암루가 있다.

바깥에서 보면 식당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체 높은 대감댁을 복원해 놓은 듯하다. 바닥은 잔디일색. 푹신한 바닥 등 외장 하나마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밥을 먹기 전 주변 분위기에 압도당할 만한 구조지만 정작 요리는 단출하다. 1인분에 13만원짜리 반수라정식 2인분을 시키면 식사 전 죽, 동치미 국물이 상에 오른다. 입맛을 돋우기 위한 것. 주요리도 전복에 간장양념조림을 한 것과 김치부침개 두 조각, 구운 고기 8조각, 밥, 된장찌개, 젓갈류, 시금치, 우엉이 따라나온다.

'마음을 움직이는 음식의 맛'을 표현한다는 게 '운암정'의 지향점이기 때문. 눈으로 즐기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우리 고유, 최고의 음식을 재현해서 내놓겠다는 야심이다. 모든 메뉴는 조선왕조 궁중 음식 명예 보유자와 궁중음식연구원, 약선요리로 유명한 약선당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철저한 자문을 거쳤다. 그것을 특급호텔 출신 한식전문 요리사 18명이 일품요리와 보양식을 끓이고, 달이고, 소담스레 담아낸다. 특급호텔 출신으로 35년 경력을 가진 맹상태 조리팀장이 '대령숙수' 역할을 맡았다. 맹 팀장뿐 아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 이룬 팀. 이들의 평균 경력은 15년 이상이다.

화학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9번 구운 소금을 비롯해 간장, 된장, 고추장은 숙성된 지 10년 된 씨장(kg당 50만원)을 한국농업예술위원회에서 구입해 접장으로 담갔다. 김치도 특별히 제작된 '운암정 김치'를 사용한다.

음식을 담는 유기, 자기 등도 최상급. 국내 최고 수준의 도예작가 20여명이 수작업으로 제작한 그릇에 음식을 담아내 품격을 더했다. 맛을 보기 전에 눈으로도 즐겁다. 공이 많이 들어간 덕에 음식가격이 조금 비싼 것도 그 때문이다. 식사시간은 점심 낮 12시~오후 3시, 저녁은 오후 6~10시.

◆메뉴

만화 '식객'에 소개된 음식을 기본으로 한 식객반상(8만원)에서부터 ▷반가음식과 식객의 요리를 반가요리 기법으로 표현하여 구성한 점심상 차림인 낮것상(3만5천~12만원) ▷궁중요리의 기본상 차림으로 왕에게 진지를 올리는 마음을 담아 귀빈의 음식 보양을 위해 현대적으로 준비한 상차림인 수라정식(15만원) ▷임금님이 의정부 육조 신하와 공신들에게 친애의 정을 표시하며 베풀던 궁중요리인 진연만찬(進宴萬贊·시가) ▷정조대왕의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 기록된 진찬안(1795년)의 요리를 기본 바탕으로 구성, '기다림의 미학'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진어별만찬(進御別晩餐·시가) 등 다양한 메뉴를 갖췄다.

일품요리, 보양식 등 총 22종류의 메뉴. 진연만찬과 진어별만찬은 최상의 식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2, 3일 전 미리 예약 주문해야 한다.

이 가운데 가장 특화된 메뉴는 오소리와 유황오리를 이용한 보양음식. 오소리는 3년 전부터 식용으로 허가됐는데 '운암정'이 처음으로 대중요리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기름이 보신에 효과가 있어 고급 식자재로 부상하고 있는 오소리뿐 아니라 유황오리도 '진짜배기'다. 경북 바이오산업단지 증명서를 받은 유황오리로 홍삼, 유황을 24개월 이상 먹인 것들이다. 마리당 20만원을 호가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밥. 이곳에서는 쌀을 직접 도정해 바로 밥을 짓는다.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 밥하기 까다로운 '운암정'에서는 아무리 좋은 쌀로 밥을 지어도 찰기가 줄어드는 문제가 있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도정을 직접 해 밥을 짓는 것이었다는 것. 하지만 효과는 만점. 찰기가 여느 쌀에 비해 뛰어나다.

사전예약은 필수. 전화: 033)590-7631.

◆그외 인근의 즐길거리

밥만 먹고 발길을 돌리기엔 아까운 코스가 지척에 있다. 하이원리조트는 지난해부터 한여름에도 초록의 슬로프에서 '쿨 라이더'로 불리는 섬머스키를 탈 수 있게 된 데다 하이원호텔에서 백운산 정상인 마천봉(해발 1,426m)까지 1시간 30분 걸리는 '하이원 하늘길'이 열리는 등 즐길거리가 늘어나면서 가족 단위 휴양객의 발길이 급증하고 있다. 리조트 측에 따르면 가족 단위 휴양객 수는 2005년 월평균 1만3천500여명에서 2008년 12만여명으로 증가, 2008년 전체 방문객 438만여명의 3분의 1인 147만명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밖에 9월 말까지 매일 밤마다 열리는 '산상 BBQ 파티'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음악 분수쇼도 방문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대령숙수(待令熟手)란? 조선시대 궁중의 남자 조리사. 말 그대로 해석하면 '왕의 명령을 받들어 요리를 하는 선수'라는 뜻. 조리 기술자로 중인계급이었다. 대령숙수는 세습돼 대대로 이어졌고 궁중잔치인 진연이나 진찬 때 입궐해 음식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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