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공간의 두께

입력 2009-08-28 11:11:15

대학 입학 후 첫 미팅, 홍옥 사과 한 개를 탁자 위에 놓고 파트너를 기다렸던 동성로 어느 다방이 떠오른다. 처음 이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동성로에서 북성로 '기린원'까지 걸었던 그 길은 어딘가? 정치금지, 통행금지, 장발금지. 젊은 청춘이 금지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금지'의 선을 넘는 일이었으리라. 장발 단속을 피해 중앙통 어느 골목을 가슴 두근거리며 내달렸던 장면이 아스라하다. 통행금지 시간을 넘겨 중앙파출소에서 밤을 지낼 수밖에 없었던 그날은 세상이 왜 그렇게 답답하게 느껴졌을까? 동기생이 하나 둘 입대할 때마다 밤새워 아쉬움을 달랬던 그 장소는 아직도 남아있을까? 1970년대 유신 학번의 기억에 남은 '대구시내'에 대한 단상이다.

언제부턴가 대구 도심에 가면 뭔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대구역에서 반월당에 이르는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 공사 현장을 밟아보면 이런 느낌은 확연하다.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자못 궁금하다. 도심을 재창조하고 실핏줄 같은 골목길을 정비하여 대구를 특색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의 일환이라고 한다. 어쨌든 도시 공간에 대한 깊은 관심의 반영이 아닌가. 반가운 것은 그 관심이 공간 기능을 개선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인식을 깔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기능성을 앞세우는 '개발'이란 개념에 익숙한데, 일련의 이번 사업 슬로건이 '재창조'라고 하지 않는가? '아름다운 거리 선정' '도심의 재창조' '골목 문화의 활성화' 등과 같은 말에서 공간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을 엿본다.

사람은 누구나 던져진 자리에서 자신을 만들어 간다. 어떤 나무를 다른 토양에 심으면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고 한다. 같은 원리에서 사람도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과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길든다. 공간은 삶의 터전인 동시에 삶 그 자체다. 자신이 태어난 곳, 유년 시절 동무와 함께 뛰놀았던 들녘과 개울가, 자주 들렀던 구멍가게, 오가던 학교 등에 관한 기억은 개인의 존재를 규정하는 실핏줄과 같은 것이다. 생활 터전으로서 구체적인 장소는 삶의 물리적 조건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심리적 정서나 가치로 남는다. 이 같은 가치나 정서는 사람 삶의 의미를 넓혀준다. 그리고 어떤 장소에 새겨진 삶의 흔적과 의미는 지워지지 않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장소에 퇴적된 이러한 의미가 그 사람의 정체성이 아니겠는가?

시금털털한 막걸리에 안주는 깍두기, 생고구마, 번데기가 고작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곳에는 마셔서 기분 좋은 술이 있고, 쳐다만 보아도 반가운 친구가 있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언어들이 술잔처럼 넘쳤다. 그리고 소비해도 소진되지 않을 듯한 젊음이 있었다. 좌중은 어느덧 노래판으로 바뀐다. 송창식의 으로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에 이르면 모두 묘한 환상의 세계에 젖어들었다. 유신 한복판이었던 1970년대 중반, 향촌동 술집 골목은 언제나 북적댔다. 문학과 예술의 아이디얼리즘이 존중되던 곳이었다. 덩달아 정치적인 절망과 젊음 특유의 니힐리즘이 뒤섞여 한판 어우러지기도 했다. 동전 몇 개가 유학 온 촌놈들의 주머니에서 달각거려도 향촌동 골목은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품어주었다.

향촌동, 중앙통, 동성로, 대구역전, 한일극장 등은 소위 '대구시내'를 대표하는 공간적 기표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은 고정된 평면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상의 지표를 벗겨 내고 수직으로 들어가면 겹겹이 쌓인 시간과 삶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공간을 정비하고 어떤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일이 시각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에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 시냇물이 흐르고 새가 지저귀는 공간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삶에 밀착되지 못하면 그것은 건조한 물리적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장소에 녹아있는 두꺼운 의미 지층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그곳에서 역동적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담으려는 노력이다. 굳이 매끈하고 단정한 직선으로 바꾸기보다는 주름지고 접힌 곡선을 그대로 살릴 필요도 있다. 그래서 고치지 않고 잘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재기 문학평론가.경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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