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威, 독특한 지명은 어디서 왔을까

입력 2009-08-28 07:00:00

"신라, 통일 전초기지로 당시 주둔 김유신 군대 위풍당당 했던 모습 따

한밤 돌담마을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목제 홍여하 선생을 배출하는 등 부림 홍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사진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돌담.
한밤 돌담마을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목제 홍여하 선생을 배출하는 등 부림 홍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사진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돌담.

군위군은 독특하다. 한자 표기가 軍(군사 군), 威(위세 위)이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군사 군'자가 들어가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군이다. 효령(명령할 령·令), 소보(보호할 보·保), 우보(保), 산성(山城) 등 면의 명칭 역시 군사용어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마을 지명에도 '군'과 관련된 지명이 적잖다. 군위읍 무(武)성리, 산성면 무(武)암리, 효령면 성(城)리, 효령면 장군(將軍)리 등이다. 이들 마을의 유래는 옛날 신라, 고구려, 백제 등 삼국이 자웅을 겨루던 때부터 하나둘씩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군위는 지리적으로 삼국시대 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전초기지이자 그 길목에 위치했다. 삼국은 지금의 문경새재, 영주의 소백산, 예천과 상주 일원에서 격전을 벌였다. 백두대간을 서로 넘어야만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신라는 통일 대업을 달성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군위 땅을 삼은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군위읍 무성리는 무(武)가 머릿자로 되어 있는 것은 마을의 적라산 중턱에 옛날 무사의 막사로 알려진 집터가 있어서 상무, 중무, 하무라 부르게 되었鳴?한다. 지금도 상무, 중무, 하무 등의 작은 마을이 있다.

효령면 장군리의 경우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합세해 백제를 공격할 때 이곳에서 하룻밤을 유숙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장군동, 나실, 아랫장군당, 장군댕이, 윗장군당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장군당의 전설을 들으면 군위의 유래가 더욱 이해가 될 것 같다.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대장군 김유신은 합세한 당나라군까지 통솔하게 됐다. 김유신이 거느린 군대가 마을(장군리)을 지날 때 마을 주민들은 위풍당당한 군대를 대접하느라 소란스러웠다. 이런 기억들이 오랜 기간 전해져 고려 말 주민들이 옛일을 추모하기 위해 산 위에 사당을 세워 김유신 등의 장군을 모시고 매년 단오날 지방 수령과 관원들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홍연백 군위군 기획감사실장은 "군위의 유래는 김유신 장군이 백제를 치기 위해 군사를 지금의 군위 땅에 주둔시켰는데 그때 군사의 위세가 당당하였다 하여 군위라고 불렸다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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