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정의 별의 별 이야기] 6년만에 앨범 발표한 윤 상

입력 2009-08-27 10:59:19

그가 만들면 기계음도 따뜻하다

방송 프로그램을 위한 믹싱 작업을 하고 있다며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인터뷰 장소로 나타난 윤상은 "오래전부터 팬이었다"는 기자의 말에 "'오빠시절'에 좋아했군요"라고 특유의 느린 말투로 답했다.

지금은 뮤지션이지만 1991년 '이별의 그늘'이 담긴 앨범으로 데뷔할 당시, 그는 분명 '오빠'였다. 수많은 소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로맨틱 가이'였던 것이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특별히 갖고 있진 않았어요. 전자음악을 계속 하고 싶었는데 장비가 비싸거든요. 그런데 한 제작자가 작업실에 투자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젊은 작곡가와 젊은 제작자가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만난거죠. 1년에 걸쳐서 앨범을 만들었고, 그게 터진거예요."

그 때 윤상에게 투자를 한 제작자는 바로 코어콘텐츠미디어의 김광수 대표다. 김 대표는 윤상 외에도 김민우 김완선 조성모 SG워너비 등 수많은 가수의 앨범을 제작한 가요계 대표 제작자다. 하지만 김 대표가 제작한 음반은 음악성보다 상업성을 더 인정받았다. 김 대표가 배출한 가수 가운데 뮤지션으로 남은 이가 많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 가운데 윤상의 앨범이 있었다.

"당시 저는 그런 스타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어요. 없는 정서를 끄집어내서 스타로 군림할 자신이 없었죠. 회사에서는 100만장짜리 가수니까 계속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음악을 하라고 했는데 제 생각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당시 저는 대중적인 곡은 남에게 주고 저는 실험적인 노래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의 생각은 회사에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집을 파트1과 파트2로 나눠 발표한 그는 파트1에 대중적인 노래를 싣고 파트2에 실험적인 음악을 담았다. 대중적인 파트1은 대박 앨범이 됐고, 그의 소신대로 만든 파트 2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파트2의 음반 판매 부진을 실패라고 보지 않았다. 그런 음악을 하는 게 뮤지션인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윤상은 그 이후 '뮤지션 윤상'의 길을 걸었다. 제3세계 음악을 대중가요에 접목해 들려주기도 했고, 해외에서는 대중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유난히 인기가 없는 일렉트로닉 음악을 윤상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한국에 알리기도 했다. 그러다 그는 6년 전 훌쩍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 역시 이렇게 유학 생활이 길어질 줄은 몰랐다"는 그는 현재 뉴욕대 대학원에서 뮤직 테크놀로지를 전공 중이다.

방학을 맞아 한국에 돌아와 있는 그는 얼마전 새 앨범 '그땐 몰랐던 일들'을 내놨다. 6년 만에 내놓은 여섯 번째 앨범이다. 기계음만을 사용해도 이렇게 따뜻한 사운드가 나올 수 있다는 게 놀라운, '따뜻한 일렉트로닉' 음반이다.

"스타일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고 만든 앨범입니다. 그냥 고유의 창작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죠. 사실 앨범을 만들 때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요즘 유행하는 하우스비트도 생각을 안 해 본건 아니지만 내가 소화할 자신이 없었어요. 소박하고 담백한 신스 팝(Synth POP)으로 앨범을 채웠죠."

작곡은 모두 그가 했다. 바로 그 앞에 놓인 흰색 맥북이 그의 악기다. '윤상 스타일'의 일렉트로닉 음악은 그의 컴퓨터에서 만들어졌다.

"이 컴퓨터가 '똘똘이2호'예요. 이 녀석이 참 큰일을 했죠. 음반 믹싱, 다큐멘터리 '누들로드' 음악 등 다 얘로 했어요. 70, 80년대에 통기타가 대중가요계에 혁명을 가져온 것처럼 컴퓨터도 음악계를 엄청나게 바꿔놓고 있죠.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음악도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참 할 얘기가 많은 뮤지션 같은데 의외로 그는 작사를 많이 하지 않는다. 이번 음반 수록곡의 작사는 박창학이 맡았다.

"작사를 할 생각이 없어요. 전 그냥 음악을 만드는 게 좋아요. 박창학이라는 친구의 글은 특별해요. 제가 더 글을 쓸 필요가 없죠. 글을 잘 쓰는 친구가 옆에 있다는 건 내가 글을 짜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죠."

윤상의 음반은 예의 윤상 스타일대로 느리고도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다. 1~2주 안에 승부가 나는 여느 대중음악과 달리 윤상의 음악은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진다.

"6년 만에 낸 앨범인데 성원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집을 낼 때까지는 대중음악계에 대해 조금 투덜거렸어요. 주변의 평가가 음반 시장에서의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죠. 그런데 지금은 투덜거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라도 음악을 할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죠."

새 앨범 발표와 방송 출연 등으로 숨가쁜 방학을 보낸 윤상은 출국하기 직전인 30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콘서트를 연다. 부인과 아들 찬영이(6), 한 달 전 태어난 둘째 아들 태영이가 있는 미국에 돌아가 남은 한 한기를 마치면 긴 공부도 마무리된다.

"떠나기 전에 궁금했던 것들이 유학 생활을 통해 많이 해소됐어요. 전자음악이 어떻게 발전을 해 왔는 지를 직접 보고 듣는다는 것 자체가 즐겁죠."

그가 한국에 돌아와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어떤 자리에 어떻게 있던, 윤상은 항상 음악 가운데에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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