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온 때문에…]열대야 어디 갔니?

입력 2009-08-20 14:17:37

◆보일러 켜고 온수 목욕

주부 최세연(32'대구 수성구 신매동)씨는 제8호 태풍 모라꼿의 간접영향으로 비가 내린 9일 밤 보일러를 틀어 놓고 잠을 잤다. 그녀는 어릴 적 시골 할머니가 방에 습기 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마기간 일부러 군불을 지피던 장면은 봤지만 한여름 난방을 위해 아파트에서 보일러를 가동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최씨뿐 아니라 한여름에 보일러를 가동하는 집이 적지 않았다. 유별난 올여름날씨가 초래한 생활의 변화다. 특히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해 샤워를 할 때 온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여름 냉수마찰로 더위를 식히던 예년 모습과 사뭇 다르다.

◆이불'긴팔 옷, 요즘은 필수품

여름이불도 잠자리 필수품이다. 지난해에는 창문을 열어 놓고 자더라도 더워서 이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요즘 새벽에는 창문을 닫아도 추위가 느껴져 이불을 덥지 않으면 숙면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부 안주영(36'대구 남구 이천동)씨는 봄에 입었던 긴팔 옷을 올해는 정리하지 못했다. 옷장에는 긴팔 옷과 함께 여름 옷이 나란히 걸려 있다. 보통 여름을 앞두고 긴팔 옷을 세탁해서 수납장에 넣어 두지만 올해는 이상기온 때문에 그대로 둔 채 사용하고 있다.

밤에도 기온이 25℃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도 사라졌다. 대구기상대에 따르면 이달 들어 10일까지 대구에 열대야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고, 지난달에도 열대야를 기록한 날은 세번 뿐이었다. 지난해 7월 열대야를 기록한 날이 20일이나 됐고 8월에도 10일까지 네번이나 열대야현상이 나타난 것과 대조적이다.

◆밤 풍경 달라져

열대야가 실종되면서 밤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더위를 피해 팔공산 등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13일 찾은 팔공산동화지구 야영장은 한산했다. 120개의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에는 50여개의 텐트만 설치돼 있었다. 예년 같으면 텐트로 야영장이 만원을 이뤘지만 지금은 곳곳에 빈자리다. 팔공산자연공원관리사무소에 따르면 팔공산동화지구 야영장에서 생활하는 일명 '텐트족'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다. 텐트만 설치해 놓은 뒤 날씨가 더워지면 나타났다 시원해지면 사라지는 사람들도 많아 텐트족 감소율은 절반을 훨씬 웃돌고 있다는 것.

창문만 열어 놓아도 생활하거나 일하는 데 지장이 없는 서늘한 날씨 때문에 에어컨 가동률은 뚝 떨어졌고, 필요할 때 선풍기를 사용하는 집과 직장도 많아졌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황모(47)씨는 "올해는 에어컨을 한번도 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력사용량도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전력 대구경북지사에 따르면 전력 소비량을 나타내는 한 지표인 순간 최대 수요전력의 경우 지난해 7월 7천312㎿에서 올 7월에는 6천830㎿로 줄었다.

◆에어컨 매출 감소…신형 할인

여름상품을 판매하는 업계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 여름 특수가 예상된 에어컨 등 냉방가전의 판매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대구백화점은 최근 한달 동안 에어컨 매출이 지난해 대비 30% 정도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동아백화점은 지난해에 비해 선풍기 매출은 20%, 음료수'여름의류 등의 매출은 5~10% 정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동아백화점은 지난 7월 말부터 여름상품 특별 판매전을 열고 있다. 옷은 평균 20~40%, 에어컨은 2009년 신형 상품을 30~50%까지 할인된 값에 구입할 수 있다.

온라인몰도 서둘러 여름세일에 나섰다. 보통 8월 말쯤 진행되는 여름 마감 세일을 2주 정도 앞당겨 진행하고 있는 것. 옥션은 21일까지 '천원의 행복' 이벤트를 통해 여름 패션 의류 아이템을 최고 90%까지 할인판매한다. 롯데닷컴은 이달 말까지 여성캐주얼 인기브랜드 '주마'의 '여름상품 마감전'을 진행하며 11번가는 시즌 오프전을 통해 여름 인기 패션 아이템을 최대 90% 내린 가격으로 8월 한달간 판매한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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