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두 지도자의 죽음

입력 2009-08-20 11:09:48

'중국 공산혁명의 설계자' '인민의 벗' 등 숱한 별명이 따라붙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는 "유해를 화장해 조국 산하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1976년 1월 세상을 떴다. 당시 장례위원장을 맡은 덩샤오핑(鄧小平)은 유언대로 직접 비행기를 타고 중국 전역에 유골을 뿌렸다고 한다. 중국의 혁명 원로들의 유골이 안치된 베이징 팔보산혁명공묘에 저우 총리의 유골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생전 중국 인민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는 죽어서도 자신을 위해 손바닥만 한 땅도 허락하지 않았다.

덩샤오핑은 조사에서 "저우 동지는 소박하고 신중, 겸손했으며 사람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솔선수범했고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지극히 평이한 品人(품인)이지만 중국인 모두가 공감한 말일 성싶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중국인들의 가슴에 저우 총리가 살아 숨 쉬는 것은 오직 인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한 그의 정신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죽음을 놓고 당시 중국은 이상한 정치적 기류로 소용돌이쳤다. 인민들의 애도 분위기가 고조되자 당황한 중국 지도부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보도나 행사를 통제했다. 심지어 강청 등 4인방 세력은 그를 비판하는 논문까지 언론에 실어 대중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고인에게 쏠리는 민심을 차단하려던 것이 결국 자충수가 되고 만 것이다.

18일 우리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한 인물을 잃었다. 그런데 장례 형식을 놓고 정부와 유족 측이 이견으로 진통을 겪다 가까스로 '6일 국장'으로 확정했다. 정부는 관례에 따라 국민장을, 유족 측은 김 전 대통령의 한국 민주주의 발전 등 기여도를 감안해 국장을 고집했다. 다행히 무리 없이 조정이 이뤄졌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저우 총리의 죽음과 비교해 볼 때 씁쓸한 뒷맛을 감추기 힘들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편승해 일각에서 까칠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공연히 되씹어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방송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에 오직 한국인만 반대 편지를 보냈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DJ와 정치적 대척점에 서 왔던 영남 지역 추모 분위기가 썰렁하다는 보도도 나왔다. 또 DJ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 유지들은 장지를 5'18 민주묘지로 결정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5'18 민주묘지의 상징성을 감안하더라도 김 전 대통령은 호남을 대변한 정치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한 정치인이기에 특정 지역을 장지로 하려는 이런 움직임은 온당치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도 이와 비슷한 주장들이 쏟아졌지만 고인의 유언과 유족 뜻에 따르는 것이 순리임을 보지 않았나.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행복한 정치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 정치사에 있어 그 어떤 정치인도 겪어보지 못한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대통령직에 오른 불굴의 투지 때문만은 아니다. DJ만큼 국민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받은 정치인이 많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평가처럼 진정 김 전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은 정치인으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려면 남은 사람들이 바른 마음가짐을 갖고 말 한마디도 신중해야 한다. 조문 정국을 어떻게 해보려다 역풍을 맞은 중국의 선례를 밟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이 진정 원하는 것은 국장도, 장지도, 수많은 조문객도 아닐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국민들이 지역감정의 골을 메우고 하나 되는 대한민국일 것이다. 훗날 저우언라이 총리처럼 김 전 대통령에게 '국민의 벗' '한국 민주주의의 설계자'와 같은 별명이라도 붙여진다면 고인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더 이상 고인이 남긴 민주주의 정신을 욕되게 하거나 우리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넣는 지역감정과 정치색은 종식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골이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마음의 골이라 할 만큼 지역감정의 골을 메우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노력해야 한다. 큰 족적을 남기고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가 지역감정을 풀고 서로의 가슴에 맺힌 것들을 털어내는 解寃(해원)의 계기가 된다면 고인도 무척이나 기뻐할 것이다.

徐琮澈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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