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극장 '만경관'

입력 2009-08-20 08:33:17

'아리랑' 나운규, 종로 배경 영화 찍어

종로는 대구 영화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구에 처음 극장이 생긴 것은 1920년대 들어서다. 일본인들이 주요 거점으로 삼았던 북성로 쪽에 조선관(옛 대구극장) 신흥관(송죽극장) 영락관(자유극장) 등의 극장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이에 당시 함경도 신사로 불리던 이재필씨가 종로에 현재의 만경관을 건립했다.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극장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인기는 더욱 높았다. 붉은 벽돌 2층으로 지어진 만경관은 1층에 공원 벤치와 같은 의자를 두었으며 2층에는 다다미를 깔아 나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관람했다. 입장료는 처음에 5전이었다가 10전으로 올랐다. 냉난방은 되지 않아 겨울에는 방석과 화로를 빌려줬는데 방석이 5전, 화로가 10전이었다. 다다미 위에 앉아 난로를 끼고 변사의 걸쭉한 입담을 들으며 영화를 보는 게 당시 극장이었다. 만경관은 현재는 국채보상로 쪽으로 정문을 두고 있지만 국채보상로가 신작로로 뚫리기 전인 개관 당시에는 큰길인 종로쪽이 입구였다.

'아리랑'의 배우 나운규가 1933년 대구에서 영화를 찍은 곳도 종로였다. 나운규의 인기를 보고 만들어진 제작사 대구영화촬영소는 그해 6월 '종로'라는 멜로드라마를 만들었다. 원작과 각색, 주연을 맡은 것도 나운규였다. 돈 때문에 첫사랑 애인을 뺏긴 청년이 악착같이 돈을 벌었지만 결국 돈 때문에 파멸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힘겨운 처지에 있던 나운규는 종로 거리를 배경으로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자본이 튼튼하지 못하던 대구영화촬영소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됐다. 하지만 나운규의 인기는 여전해 나운규가 대구의 한 극장 무대에 인사하러 올랐을 때 들이닥친 인파 때문에 목조건물 2층이 무너지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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