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남아공과 권투

입력 2009-08-12 11:14:23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부시먼(Bushman)으로 잘 알려진 칼리하리 사막 지역의 원주민 산(San)족의 터전이었다. 1486년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하면서 유럽의 침공을 받아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식민지, 18세기 중반 종족 내전, 19세기 초 영국 식민지라는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다. 20세기 초 독립한 뒤에는 인종 격리 정책(아파르헤이트)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 정책은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사라졌지만 아직도 다이아몬드와 함께 남아공을 떠올리는 대표적인 단어다.

우리나라에서 남아공을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는 아마 홍수환일 것이다. 홍수환은 1974년 7월 3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WBA 밴텀급 세계 타이틀전에서 아널드 테일러를 15회 판정으로 누르고 챔피언에 올랐다. 당시 어머니 황농선 씨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는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쳤고, 모친은 "그래 수환아! 대한국민 만세다"로 화답해 오랫동안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의 승리는 우리나라 프로권투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66년 첫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김기수가 68년 타이틀을 빼앗긴 지 7년 만에 두 번째 세계 챔피언이 됨과 동시에 한국 프로권투의 전성기를 열었다. 홍수환 이후 우리나라의 세계 챔피언은 유제두, 염동균, 김성준, 김상현, 박찬희, 김태식, 김철호, 김환진, 장정구, 박종팔, 유명우로 이어져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야구, 농구 등 프로스포츠의 발전으로 프로권투는 내림세였다. 2007년 WBC 페더급 챔피언인 지인진이 격투기 무대 진출을 위해 타이틀을 반납하면서 우리나라는 無(무) 챔프국이 됐다.

한국 프로권투 유망주 김지훈(22)이 9월 12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국제복싱기구(IBO) 슈퍼페더급 타이틀에 도전한다. 상대는 졸라니 마라리(32'남아공)다. 김지훈의 프로 통산 성적은 18승 5패로 다소 평범하지만 2006년 12월부터 8경기 연속 KO승을 거두며 상승세다. 또 18승 중 83%인 15승을 KO로 장식한 강타자다.

35년 전 홍수환이 남아공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둬 한국 프로권투의 전성기를 열었듯 김지훈도 같은 장소에서 시원한 KO승을 거두길 바란다. 또 그 승리가 국내 프로권투 부활의 신호탄이 됐으면 싶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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