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트레킹에 시름 싹~ 명품 온천욕에 피로 싹~
이제까지 페리를 이용한 일본 산행은 아소산(阿蘇山)'구주산(久住山)과 대마도가 주류를 이뤘다. 물론 전문 산악인들은 남'북 알프스 종주나 후지산으로 지평을 넓혀가기도 했다. 페리 여행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20, 30만원대로 해외투어가 가능하다는 점도 있지만 로맨틱한 항구 야경과 선실숙박이라는 이벤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 트레킹의 선택을 넓혀줄 항로가 개설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6월 말 동해시와 돗토리현(鳥取縣) 간 페리 운항이 시작했다. 트레커들이 이 항로에 관심갖는 이유는 따로 있다. 돗토리현이 서부일본의 유명한 역사, 문화도시인데다 그 곳에 일본의 명산 서열 3위로 '리틀 후지'라 불리는 다이센(大山'1,729m)이 위치한 때문이다.
NHK 명산 랭킹서 3위…국립공원 지정
다이센은 1936년 일본에서 세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서일본지방의 최고봉이다. NHK에서 실시한 명산 랭킹에서 후지산'야리가다케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야생화와 고산식물, 단풍, 설산트레킹으로 이어지는 매력 때문에 사계절 등반코스로 명성을 얻고 있다. 산중턱의 대산사(大山寺)주변은 메이지유신 전까지 불교 산악성지로 숭배돼 민간인 입산이 금지되었다. 이 덕에 너도밤나무'마가목'산버들이 울창한 원시림을 이루었다. 대산사는 8세기에 세워진 고찰로 주변에 아미타당(阿彌陀堂)'대신산산사(大神山山社)를 거느리고 있다. 다이센 정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개성스런 모습이 연출된다. 완만한 들판과 스카이 라인이 부드럽게 연결된 서쪽은 '호키후지'라 불릴 정도로 후지산과 닮은꼴을 하고 있다. 말발굽 모양의 절벽이 산등성이를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북쪽은 험난한 위용대로 '기타카베'(북벽)라 불린다.
사카이항에서 입국수속을 밟고 나와 돗토리현에서 보내온 버스에 올랐다. 돗토리현은 항로 개설에 맞춰 강원도에 직원 연수까지 시켜가며 대비를 해왔다고 한다.
산행은 대신사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일행은 현지가이드의 선두'중간'후미 3각 에스코트를 받으며 다이센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나무계단,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 낙석주의 표지판까지 일본의 트레일은 한국의 등산로와 거의 흡사했다. 주변의 식생들도 우리의 식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아마도 울진과 위도를 나란히 하기 때문일 것이다. 등산로에는 '합목'(合目)표지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합목'이란 출발지부터 정상까지를 10등분해 고도에 따라 위치를 정해 놓은 것을 말한다. 정상까지 일정 간격으로 세워져 안내판, 휴식처 역할을 한다. 다이센 등산의 가장 큰 부담은 엄청난 경사각. 5km 남짓한 구간에 1,700m급 봉우리를 세워 놓았으니 사면(斜面)이 살인적(?)일 수밖에 없다. 전국에서 산깨나 탄다는 준족들이 모인 자리건만 다들 숨찬 기색이 역력하다.
주목군락지 녹색 물결에 피로가 말끔히
꼬박 세 시간을 걸어 8합목(1,580m)에 진입했다. 발밑으로 돗토리현 촌락의 모습과 연무에 가려진 동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풍경에 땀을 씻고 정상으로 향한다. 스카이 라인을 감추고 있던 구름이 걷히면서 그 유명한 갸라보쿠(주목의 일종) 군락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능선을 따라 펼쳐진 '녹색 융단'은 비탈을 오르느라 혹사한 트레커들의 여독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이곳 주목들은 키를 바짝 낮추었다. 높은 곳에서 거센 바람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체득한 지혜일 것이다. 이 주목들의 장쾌한 도열은 1km남짓 이어진다. 군락지를 관통하는 산책로도 나무의 키와 맞춰져 있어 주목의 생생한 녹색 물결을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다. 수 만평에 달하는 대단위 군락은 인공조림의 결과라고 한다. 벌목과 강풍으로 민둥산이 된 산에 시민들이 '1목1석'(一木一石)운동을 벌여 산에 오를 때마다 나무 한그루씩 옮겨 심고 돌을 날라 패인 곳을 메웠다. 주차장을 출발한지 세 시간여 만에 정상석이 안개속에서 일행을 맞는다. 드디어 미센(彌山'1,709m) 정상이다. 발 아래 요나고만(米子灣)이 안개속에 흐릿하다. 가끔씩 구름이 끊기는 짧은 시간을 이용해 비경들은 속살을 내보인다.
너도밤나무들 호위 속 유쾌한 하산길
일행은 미센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 길을 재촉한다. 여전히 구름은 비경을 꼭꼭 숨기며 심술을 부리고 있다. 올라올 때 놓친 것들이 가끔씩 하산 길에서 새롭게 모습을 나타낸다. 각(角)을 바꾼 주목과 야생화의 컬러가 바람 속에서 더욱 선명하다. 하산 길에 들여다본 북벽은 거대한 성채(城砦)였다. 직벽의 날카롭고 긴장스런 배치는 섬뜻한 느낌마저 든다. 5합목(1,245m)에서 하산 길은 대산사 방향으로 잡았다. 초입부터 나무계단이 쉼없이 이어진다. 잠시 벤치에 앉아 더위를 식힌다. 너도밤나무숲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활엽수들이 등산객들을 감성모드로 바꿔놓는다. 근위병 같은 거목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쾌한 하산 길은 계속된다. 대산사 부근의 약수는 일본에서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수백년 거목들 뿌리에서 나온 자양(慈養)이니 당연한 귀결일 터. 호젓한 산길을 10여분쯤 걸으면 대신산산사가 고풍스런 자태로 다가온다. 퇴색한 목재'석등의 이끼에서 수백년 연륜이 배어난다. 건물은 신사(神社)지만 석조물이며 건물의 배치가 우리의 사찰과 많이 닮았다. 신사엔 입구 정갈한 약수터 하나가 있다. 이 약수가 수명을 연장시켜준다는 '어신수'(御神水). 길옆에는 두건과 앞치마를 두른 익살스런 아기부처들이 곳곳에 서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영혼을 달래고 자녀들의 복을 비는 의식이라고 한다. 등산객들도 고개를 숙여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고 오늘 안전산행을 감사하는 기도를 한다. 종점으로 내려가는 길, 편백나무 그늘이 트레커들을 시원하게 해준다.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Tip]< 트레킹 후 온천욕 "천국 따로 없네">트레킹 후 피로를 푸는 데는 온천이 최고. 다이센 부근의 가이케온천(皆生溫泉)에서 목욕을 즐길 수 있다. 일정이 빡빡하므로 산행 시간을 5, 6시간 안으로 끝내야 목욕이 가능하다. 돗토리현에는 도토리사구'마에츠성(松江城) 등 명소가 많다.
여유 있게 둘러보고 싶다면 3박4일짜리 코스(38만원)를 택하면 된다. 2박3일 코스는 19만원이며 동해항까지 교통비는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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