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옛날 옛적 우리 고향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올 무렵/ 송찬호

입력 2009-08-03 07:00:00

마당가 분꽃들은 노랑 다홍 빨강 색색의 전기가 들어온다고 좋아하였다

울타리 오이 넝쿨은 5촉짜리 노란 오이꽃이나 많이 피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닭장 밑 두꺼비는 찌르르르 푸른 전류가 흐르는 여치나 넙죽넙죽 받아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식구들, 늦은 저녁 날벌레 달려드는 전구 아래 둘러앉아 양푼 가득 삶은 감자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해 여름 드디어 장독대 옆 백일홍에도 전기가 들어왔다

이제 꽃이 바람에 꺾이거나 시들거나 하는 걱정은 겨우 덜게 되었다

궂은 날에도 꽃대궁에 스위치를 달아 백일홍을 껐다 켰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송찬호의 시적 상상력은 우리 시에서 가장 특이한 이다. 이란 근작 시집은 동화의 찬란한 상상력을 빌리면서 사물들은 모두 눈높이가 낮아지고 단순해지고 더 명랑해졌다. 사물들은 친근해졌으며 더 또렷해졌다. 마치 크레용으로 쓰고 그린 그림일기의 느낌이다.

꽃과 전기의 유사성을 발견한 시인의 눈에 전깃불은 꽃이고 꽃은 전깃불이다. 그리하여 하면서 꽃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려면 전기는 신기하고 낯선 문명이 아니라, 불빛/생명력이라는 근원의 물질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분꽃들의 노랑 다홍 빨강 색색의 전기와 오이 넝쿨의 5촉짜리 노란 오이꽃과 찌르르르 푸른 전류가 흐르는 여치를 통과하는 전기 이미지가 먼저 존재하고나서 백일홍의 꽃/전깃불이 가능했다.

시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