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전/서울시립미술관 / ~9.13
어디서 읽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인상파 화가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한 피카소의 말이 생각났다. 만능의 그 천재에게도 고민이 있었던지 마치 인상파는 아무 걱정 없이 눈앞의 현실을 즉흥적으로 좇는 즐거운 미술로 여겼던 것일까. 피카소로서는 대중의 몰이해 속에서 그의 추상이 받는 의심이나 비난보다도 명성에 걸맞게 늘 새로운 창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인상주의자들이라고 관객층의 편견과 싸우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일상적이거나 전원적인 주제의 가시적인 세계를 빛과 색채로 묘사하는 그들의 양식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널리 사랑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 세계가 주는 친근함과 안락함에 피카소는 부러움을 나타낸 것이리라.
인상파 미술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후반의 약 20년 동안 전쟁도 없었고 경기의 진작으로 대도시가 번영을 누렸던 황금 시기였다. 그들은 관념이 아닌 시각에 입각해 무거운 주제를 피하고 주로 가정 생활이나 근교의 자연 풍경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낙천주의자들이었다. 사실 르누아르는 그 운동의 중심에 있던 10년 정도를 제외하면 전형적인 인상파의 기법과는 다소 거리가 먼 그림을 그렸다. 색의 반점으로 분할하던 거친 형태 묘사는 가늘고 긴 털실처럼 느껴지는 부드러운 붓놀림으로 바뀌었고 빛 속에 용해돼 평평해 보이던 화면에 자연스런 윤곽선과 양감을 되살렸다. 금발과 고운 살결을 지닌 그의 인물화 속의 여인들은 르누아르 특유의 채색과 붓질에 의해 더욱 아름답고 풍만해 보인다. 특히 서양 미술에서 오래된 주제인 '목욕하는 여인'을 많이 그렸는데 관능과 환희를 내뿜는 그런 나체화들에 대해 '누드의 미술사(The Nude)'를 쓴 케네드 클라크는 비너스를 그려오는 고전 양식의 전통을 훌륭하게 계승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작품으로 기술하고 있다.
파리의 오르세와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던 낯익은 작품들을 포함해서 세계 여러 곳에서 대여한 100여점(그중 유화 70여점)으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르누아르 예술의 매력인 밝은 색채와 여성적 생명감의 기쁨을 감상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아름다움을 더는 그릴 수 없다는 것이 현대 화가들의 불행이다. 삶의 쓰라린 경험을 토로하는 현대 미술과는 다른, 결코 돌아갈 수 없는 황금시대의 심미성을 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그래서 결핍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부러워하게 된다. ydk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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