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 볼로냐를 꿈꾸며

입력 2009-07-28 10:58:23

얼마 전 뜻밖의 초대장을 받았다. 지난해 청도에 둥지를 튼 개그맨 전유성씨로부터 날아든 것이었다. 그런데 여느 초대장과 달리 내용이 참으로 엉뚱하고 기발해 한참을 웃었다. 내용인즉 보신탕을 즐겨먹는 초복날에 애완견을 위한 콘서트를 연다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개나 소나 콘서트!'

'애완견은 가족입니다. 애완견에게 음악을 들려주려 합니다. 이제 애완견도 문화생활을 해야지요. 그림도 가르치고 무용도 가르치고 재능이 보인다면 뭐든 가르쳐야죠. (중략) 사람들도 사람이지만 개들도 자기네끼리 깜짝 놀라겠지요. 어쩌면 이렇게 큰 개판이 있을 수도 있냐고…. 추신, 임신한 애완견을 꼭 데려오십시오. 태교에 좋습니다.'

달리 전유성이랴. 우리나라 개그계의 영원한 '아이디어 뱅크'로 통하는 그다운 초대장이었다. 콘서트에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문제는 내게 애완견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봤다. 개가 없으면 어때? 개 인형 한 마리 안고 가서 애완견이라고 억지 부리면 되지. 아니면 곰 인형이라도 들고 가 개라고 박박 우겨볼까. 그러면 전유성씨가 '나보다 더 엉뚱한 사람 예 있네'라며 너털웃음 터뜨리며 들여 보내주지 않을까.

아쉽게도 '개나 소나 콘서트'에 가보지 못했다. 이날 이색 콘서트에는 2천명의 관객이 애완견과 함께 입장해 성황을 이뤘다는 보도를 봤다. 소싸움의 고장 청도답게 소도 3마리 입장했다는 소식과 함께.

1949년생이니 전유성 씨는 환갑을 넘긴, 적잖은 나이이다. 그를 보면서 유대교 랍비이자 시인인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가 떠올랐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장미꽃 같은 용모, 붉은 입술, 유연한 팔과 다리가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적극적인 감동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60세의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청년이면서도 청춘이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신형 휴대폰이나 MP3를 갖고 싶다는 바람 같은 것은 갖고 있지만 정작 평생 이루고픈 꿈이 없는 10대들도 상담 현장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자녀 문제로 연구소에 찾아오는 엄마들 역시 이런 하소연을 한다. 공부도 공부지만 아이들이 꿈이 없어 걱정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대학생을 둔 부모까지도 자녀의 '꿈 없음'을 하소연하고 간다.

이런 엄마들에게 필자는 늘 되묻는다. "그럼 어머님은 어떤 꿈을 갖고 계세요?" 엄마들은 십중팔구 당황스러워 하다가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 성공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자녀가 잘 되는 것은 제1의 꿈입니다. 자녀와 상관없이 어머니가 가진 제2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안타깝게도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엄마를 만난 적이 없다. 마이클 조던의 어머니는 키가 작아 매번 동네 농구 시합에서 지고 돌아와 속상해하는 아들을 위로하며 키가 크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았다. 그리고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되는 꿈을 가진 조던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했다고 한다.

'미쳐야(狂) 미친다(及)'라고 했다. 때로는 광기로 비칠 만큼 정신을 곧추 세우고 몰두해야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라 했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대구에는 기회가 없다고 말한다. 변변한 일자리도 없는 무기력하고 폐쇄적인 도시라고. 그런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전유성씨는 왜 청도에서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왜 서울을 마다하고 '촌놈'이 되기를 자청했을까. 필자는 대구에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 번도 지역에 있다는 것이 걸림돌이 된 적은 없다. 오히려 지방에 있다는 희소성이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그림책에 미쳐 있다. 대학생 때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을 보고 받은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은 문학의 치유적인 힘을 활용하는 심리 상담사의 길을 걷고 있다. 약간은 뚱딴지같은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대구가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그림책 도시가 되는 꿈을 꾼다. 이탈리아의 지방 도시인 볼로냐가 그림책의 메카가 되었듯이 대구가 그리 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리라.

김은아(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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