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유기농 야채보다 맛있는 게 있나~
나만이 즐기고 싶은 책이나 장소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끼는 곳.
'노고추'(老古錐'053-853-6656)가 개인적으로 그런 곳이다. 몇 년 전 우연찮게 찾게 된 노고추는 마음에 쉼표가 필요할 때 숨겨뒀다가 나만이 홀로 즐기고 싶은 그런 곳이다.
경산 와촌면, 널찍한 잔디가 펼쳐진 노고추 앞마당에는 수십 개의 장독이 놓여있다. 여기에서 바람과 물, 햇빛이 빚어낸 된장'간장'김치가 익고 있다.
2005년 배명자(56) 사장은 땅 좋고 물 좋아 오래전 사둔 집에서 뭔가를 시작하려 했다. 경치가 좋아 별장처럼 이용하며 차 도구들을 모아 두던 집이다. 그에게 눈에 띈 것은 이곳이 일조량이 많은 데다 물과 공기가 좋다는 점. 다시 말해 '장을 담그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란 점이었다.
"장을 담가보자 싶었어요. 믿고 먹을 만한 먹을거리를 찾는 분위기였으니까요."
경영학 전공자인 아들을 붙잡았다. 차와 식사, 장류를 아우르면 대구를 대표할 만한 '문화'가 될 성싶었다. 아들 홍영기(32)씨는 지금 공부를 마치고 와촌식품을 맡고 있다.
배 사장은 식당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밥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미 준비된 식당 안주인이었다. 명정차회 회장인 그는 오랜 세월 다도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맛과 멋에 대한 감각과 테이블 세팅 등이 몸에 익어 있었다. 게다가 일본'미국'유럽 등 풍부한 해외여행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준 높은 음식문화가 그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어머니에게 장 만드는 방법을 전수했다.
"애초에 식당으로 돈 벌 생각은 없었어요. 우리 집에서 만든 장을 홍보하려다 보니 어쩌다가 시작하게 된 거죠."
그는 음식에 화학조미료는 전혀 쓰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직접 농사지은 것들 중에 제철에 나는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재료는 유기농 야채들이다. 요즘 주로 사용하는 것은 가지와 호박. 지천에 널린 칡순도 캐어 튀김으로 만들었다. 질경이'뽕잎도 약초탕수의 재료가 된다. 이른 봄엔 민들레'쑥이 차지하던 자리였다. 요즘 한창 쑥쑥 커가는 상추도 좋은 재료가 된다. 상추로 전과 물김치를 만들고 깻잎 여린 순으로 조림을 만들어 내놓기도 한다.
화학조미료 없이 어떻게 맛을 낼까? 화학조미료로 길들여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쉽지 않을텐데 말이다.
"멸치'다시마'표고버섯이 그 비밀이죠. 질 좋은 국산 재료들로 다싯물을 우려내 이것으로 모든 음식을 합니다. 심지어는 잡채의 당면도 다싯물에 삶아내요. 그러면 조미료 없이도 얼마나 맛있는데요."
18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간장소스, 초피액젓도 사용한다. 특히 샐러드 소스는 특이하게도 액젓으로 하는데, 이것은 초피(제피)를 넣어 비린맛을 제거했다. 생선살을 녹인 액젓은 음식에 감칠맛을 더한다.
여기에다 단맛은 과일과 과일청으로 낸다. 매실청'오미자청'솔청'자두청 등 20가지를 만들어놓고 음식에 사용한다. "우리 집에선 설탕은 감주 만들 때만 사용해요. 그것 외엔 모두 과일과 과일청을 이용하죠." 쌈장에도 생된장에다 사과와 오이, 양파를 다져 넣는다. 그러면 쌈장의 맛이 훨씬 상큼하고 개운하다.
"손님들 중 '잡채 이까짓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에겐 안 그래요. 당면 삶아내려면 얼마나 많은 다싯물이 필요한데요. 그래서 저희 집에선 음식은 얼마든지 더 드리지만 남기지는 말아달라고 당부하죠."
외국 손님들이 오면 국적에 따라 테이블을 세팅하곤 한다. 일본인은 개인별 접시, 미국인은 불고기와 샐러드를 준비한다. 그러니 외국 손님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손님들의 품격이 높으니, 안주인의 음식솜씨도 점점 높아진다. 이렇게 노고추는 주인과 손님이 더불어 행복한 공간이다.
상을 포함한 실내 가구들은 묵직한 세월의 무게를 전해주는 고가구들이다. 화려하지 않고 단출한 실내는 고급스런 가구들과 더불어 담백한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실은 좋은 공기와 물맛도 노고추 음식 맛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국산콩에다 좋은 물로 만들어진 된장'고추장'간장'장아찌 등은 '와촌식품'(www.wachonfood.co.kr)이란 브랜드로 판매 중이다. 시골에서 직접 구입한 콩에다 좋은 물로 장을 담가 홈페이지 하루 방문객 수가 3천~4천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노고추는 미리 예약해야 한다. 1인당 1만8천원에서 5만원 사이.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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