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로 읽는 한권] 생명수 찾아 탈북한 바리공주 고향에 돌아갈 날은 언제일까

입력 2009-07-22 07:00:00

이 반지가 딴 사람에게 가지 않은 것은 자네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건 자네도 잘 알잖는가? 자네에게 무슨 힘이나 지혜가 있어서가 아니야. 어쨌든 자네는 선택되었고 따라서 자네에게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모두 짜내야 하네. 『반지전쟁』 J. R. R. 톨킨 지음/ 김번 김보원 이미애 옮김/ 예문/ 전 5권

J. R. 톨킨의 작품 '반지의 제왕'은 오늘날 성황을 이루고 있는 판타지 문학이나 롤플레잉 게임의 현대적 원형을 제시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발더스 게이트'도 '파이널 판타지'도 '디아블로'도 기본적으로는 톨킨이 구축한 서사의 구조 속에서 아직 머물러 있는 것이다. 초라한 시골 마을에서 한적하게 살던 주인공, 어느 날 운명은 보다 넓은 세계로 그를 끌어들인다. 넓은 세계에서도 결국 자신과 자신의 세계가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주인공은 이제 배를 타고 이역만리로 나아간다. 그 이역만리에서 주인공은 처절한 싸움 끝에 세계를 구하게 되고, 그는 영웅이 되어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최근 황석영은 이러한 구조와 거의 흡사한 소설 '바리데기'를 발표한 바 있다. 바리공주의 신화를 모티프로 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주인공 바리는 앞서 말한 판타지 문학, 혹은 롤플레잉 게임의 주인공과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북한의 청진은 세계 지도에서 보자면 반지의 제왕의 '샤이어'와 같은 촌구석 마을이다. 바리는 그곳에서 태어나 운명의 소용돌이를 맞으며 보다 넓은 세상인 중국으로 '탈북'한다. 중국에서도 발붙일 곳이 없어진 바리는 이제 다시 밀항선을 타고 서쪽의 끝인 영국으로 향한다. 제국주의의 본 고장에서 그녀는 영적인 능력을 통해 그 시대가 인간에게 남긴 처참한 상처를 조용히 치유한다.

'반지의 제왕'은 분명 중세의 십자군 원정을 연상케 한다. 서구 중심적 세계관으로 바라보았을 때 고로 이 여정은 이교도나 야만인들로부터 세상을 '보호'하고 '정화'시키기 위한 미션이자 신화다. '바리데기'의 여정 또한 '정화'와 '치유'가 목적인 면에서는 이와 비슷하지만, 내막은 전혀 다르다. 황석영 스스로가 밝혔듯, 현대판 바리는 '새 세기의 문화와 종교와 민족과 빈부 차이를 넘어선 어떤 다원적 조화'를 꿈꾼다. 그녀는 결국 하이브리드를 생산한다. 그 아기는 죽지만, 그러나 곧 다시 잉태된다.

바리는 아직 '생명수'를 들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여전히 테러와 신자유주의, 탈북은 진행 중이고 고로 바리의 미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황석영이 이 소설의 결말을 일부러 열어두었다고 확신한다. 언젠가 바리가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과 재회해 웃으며 돌아올 때까지, 이 우울한 '판타지'는 그 '엔딩'을 미뤄둔 셈이다.

내가 먼바다를 건너 영국으로 흘러가게 된 것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 이름 탓인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저 고적한 움집에서 밤마다 내게 바리공주 얘기를 해 주었는데 해가 저무는 서천으로 생명수를 찾으러 떠난다는 줄거리가 배를 타고서야 뒤늦게 생각이 났다.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창비/ 301쪽/ 1만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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