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있는 法이나 제대로 지켜라

입력 2009-07-20 10:44:47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

사흘 전 제헌절 기념식에서 빨리 改憲(개헌)을 해야 한다며 발 벗고 나선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딱 들어맞는 속담이다.

미디어 법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 해 국회 본회의장을 농성 점거해 가며 반 년 넘게 싸우고 있는 경황 속에 명색 입법부 首長(수장)이란 사람이 뜬금없이 헌법 고치자는 소리를 꺼냈으니 '봉창 두드리냐?'는 풍자가 안 나올 수 없다. 국회 회의장이 조폭 세계의 뒷골목 마당도 아니고 자리 가르고 앉아 勢(세) 싸움으로 날 새는 것만 해도 議長(의장)으로서는 정치 도의상 책임이 큰 마당에, 당장 먹고사는 민생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대통령 중임제 따위 얘기나 꺼내고 있으니 봉창 두드린단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 정작 그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소신 있는 직권상정의 신속한 권한 행사다. 가결되든 부결되든 일단 상정시켜 놓고 입법 여부는 국회 기능에 맡기면 되는 일이다. 미디어법 비정규직법 등 민생 법안이 산적한데도 배부른 소 여물 보듯, 법에 보장된 직권 행사를 미루며 여야 좌우 눈치만 살피다가 뜬금없이 헌법 뜯어고치자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마치 심장 수술이 초를 다투는 중환자를 눕혀 놓고 '쌍꺼풀 수술부터 하자'는 거나 다를 바 없다. 그쯤 되면 국회를 이끌어 갈 수장의 정치 철학은 빈곤 그 자체다.

국회의장뿐만이 아니다. 헌법 개정을 제안한 제헌절 기념식장에서 김 의장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가슴에 손을 얹고 서 있었던 法(법) 분야의 다른 수장들(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선관위원장 등등)은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 허물어져 가는 법의 권위에 대해 과연 얼마나 깊이 고뇌해 봤을까? 그분들도 지금 우리나라가 법치국가이고 법과 질서에 의해 건강하게 돌아가는 사회라고 생각하고, 또 확신하는가라는 의문을 말한다. 만약 그분들이 '그렇다'고 답한다면 참 솔직하지 못한 지도자들이란 반론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경찰청 통계 하나만 예로 들어봐도 그렇다. 올 들어 기초질서 위반 사범 단속 건수는 47만여 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38만여 건에 비해 무려 24%가 급증했다. 소란 난동은 기본이고, 파출소 기물 한두 개쯤 둘러치는 행패쯤은 약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통계다. 교통법규 위반도 마찬가지다. 啓導(계도) 건수 기준으로 약 206만 건. 작년 동기에 비해 74%나 증가했다. 우습게 안다는 얘기다. '언 소주'인지 '끓는 맥주'인지 모를 좌파적 소비자 시민단체의 광고주 협박, 일부 전교조의 탈법 시국 선언도 법과 (맹물 같은) 공권력을 깔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길거리 질서에서부터 기업체 협박, 공업용 국수까지 날이 갈수록 무법천지로 굴러간다는 얘기다.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누구 탓이 큰가? 입법은 팽개치고 '공중 부양族(족)' 소리나 듣는 입법부는 말할 것도 없다. 법을 지키는 사법부는 믿을 만한가. 일부 법원은 경찰관을 때리고 공무집행을 방해한 반사회적 폭력시위 사범에 대해 24%만 영장을 발부하고 76% 이상을 풀어줬다.(서울 중앙지검 지난해 4~12월 통계) 일반범죄 전체 영장 발부율(전국 75.7%)에 비춰 봐도 3분지 1에도 못 미친다. 다른 범죄는 엄하게 다루면서 촛불시위 폭행 공무집행방해 사범 등은 느슨하게 풀어줬다는 얘기다.

좌파적 반사회 폭력시위 사범들을 인권 핑계로 고슴도치 제 새끼 감싸듯 하는 일부 판사들에다, 개헌 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는 의장, 외유 동반 출장 때 빼고는 사사건건 편 갈라 악법 시비로 세월만 보내는 국회의원, 그런 걸 보고도 기초 질서'교통법규 꼬박꼬박 지키고 말 잘 듣는 국민이 있다면 천사 아니면 바보다. 법 잘 안다는 높은 사람들이 법을 가볍게 다루면서 제헌절 식장에 아무리 근엄한 얼굴로 애국가 부르고 서 있어봤자 어느 누구도 존경의 눈으로 올려보며 준법을 다짐하지 않는다.

'개헌' '악법' 외치지 말고 있는 법이나 제대로 잘 지키시라.

金 廷 吉(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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