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휘의 교열 斷想] 건하게 마시고

입력 2009-07-20 07:00:00

푹푹 찌는 무더위로 인해 퇴근길 '시원한 막걸리'가 생각난다.

'싸구려 술'로 신세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던 막걸리가 인기를 얻고 있다 한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다 웰빙 시대에 맞춰 싼 가격과 몸에 좋은 술이라는 강점을 내세우며 술 시장의 일정 영역을 구축한 것이다. 음식점, 슈퍼, 백화점이나 대형소매점에서는 물론 막걸리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고급 식당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또 소비층도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화하고 있다.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6도라 다른 술과 비교해서 취기가 심하지 않고, 음식처럼 허기를 면해 주고, 여럿이 마시면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등의 이유로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왔다. 근래 들어서는 유산균과 식이섬유가 풍부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일본에서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지역에서 생산되는 불로막걸리의 일본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언론인들은 애주가로 정평(?)이 나 있다. 낮술도 마다하지 않지만 폭탄주를 유달리 즐겨 마신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집단이라고 핑계를 대보기도 하지만 누구도 건강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통업체 마케팅과장 고 씨는 최근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 치료를 받았다. 거래처의 한 관계자와 술을 거하게 마신 뒤 스크린골프를 친 게 화근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버섯전골. 입으로는 점심이 들어가지만 위장에서는 야식이 너무 거하게 들어온다고 야단이군요." 앞서의 문장에서 '술을 거하게'와 '야식이 너무 거하게'라는 표현의 '거하게'는 '거나하게' '건하게'의 잘못이다.

'거하다'는 형용사일 때 산세가 웅대하고 수목이 무성하다("산세가 거한 지리산."), 동사일 때는 어떤 곳에 살고 있거나 머물다라는 뜻이다. '건하다'는 넉넉하다("이제 살림이 제법 건하게 되었다.")란 뜻으로 거나하다의 준말이고 흥건하다와 같은 말이다. "접대 술을 한 차례 건하게 마셨다." "글줄이나 한다는 선비 다섯이 기생들을 데리고 야유회를 나갔다. 술이 거나하게 오르자 누군가가 '소리'에 대한 의견을 나누어보자고 했다."라고 쓰인다.

다섯 가지 덕을 지녔다 해서 '5덕주'라 불리는 막걸리도 정도에 지나치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 한잔 술로 엉긴 감정을 서로 풀려다 술이 거나해져 불상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과유불급 즉,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했다.

원로 국어학자 서정범(83) 경희대 명예교수가 7월 14일 별세했다. 수필가이기도 한 서 교수는 국어학자로서 우리말 어원에 깊은 관심을 가져 방언 속어 등을 연구하고 알타이계 언어와 우리말을 비교 연구한 '국어 어원사전' 등을 펴낸 바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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