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구역 역사'전통'생활권 무시 지명'청사 놓고 주민 갈등 불보듯
전국적인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중앙정부 주도로 2005년에 이어 다시 정치적 의제가 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편을 주문하였고, 여야 합의로 국회에 관련 특위가 구성되었으며, 행정안전부는 통합지역에 줄 인센티브를 준비하고 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요체는 현재 16개 광역자치단체, 230개 기초자치단체로 되어있는 기존의 2층제를 50~70개 자치단위의 단층제로 바꾸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경북 지역의 2005년 국회 특위의 개편안을 보면, 경산-청도, 고령-성주-칠곡, 김천-구미-군위 등을 각각 합쳐 8개 통합시로 개편하는 대신에 도(道)를 없애는 것이다.
이런 개편의 근거는 지금의 지방행정체제가 100여 년 전인 구한말 농경문화시대에 골격이 형성된 것이어서 현재의 생활권·경제권과의 불일치가 심하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교통·통신 발달로 인한 공간적 거리 축소에 맞추어 소규모 지방단위를 통합하여 공공서비스 제공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위의 논리에 따라 많은 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이 국가 주도의 구역 개편을 바람직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고, 이들에 대한 언론이나 국민들의 지지도 높다. 그리고 개편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역 정서 때문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앞의 개편 주장은 자치구역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무시하고 있으며, 통합시 오늘날 복잡해진 생활권이나 경제권을 하나로 일치시킬 수 없다는 사실과 우리나라의 기초단위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커 통합만으로 효율을 증대시킬 여지가 작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안의 실체적인 문제점보다 현실적으로 더 곤란한 문제는 통합 추진과정에서 나타날 시·군 주민 간의 갈등이다. 통합과정에서 통합시의 명칭이나 시청소재지, 시장의 선출문제 등에서 엄청난 갈등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우선 2~4개 시·군이 합쳐져 하나의 통합시가 되는 경우 그 명칭을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1995년 시·군 통합의 경우 경산시-경산군, 안동시-안동군과 같이 시와 군의 명칭이 동일한 경우가 많아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역사나 전통, 생활권과 경제권이 다른 지역이 통합되는 경우, 예를 들어 청도와 경산이 합쳐지는 경우에 그 명칭을 두고 양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은 첨예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통합시 청사의 소재지를 두고 지역 간에 엄청난 대립이 나타날 것도 분명하다. 시청사가 입지하는 지역은 큰 혜택을 받는 반면, 기존 청사가 이전해 가는 지역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청과 군청이 같은 지역에 있던 1995년의 통합과 달리 거의 모든 지역에서 통합시청사 유치를 둘러싼 시·군 간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전통과 문화가 다른 2~4개 지역이 모여 하나의 통합시를 이루는 경우 시장 선거를 두고 연고지 중심의 소지역 간 갈등도 증폭될 것이다. 그 결과 단체장이 인물이나 정책 위주로 선출되지 못하고 지역정서나 지역감정에 의해 선출되게 되고,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정실인사가 됨에 따라 지방자치의 선진화는 요원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와 문화, 생활권과 경제권이 다른 2~4개 시와 군의 통합 과정은 많은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통합은 통합론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지역 간 윈-윈(win-win) 게임이 아니라 중심지역과 주변지역 간의 제로 섬(zero-sum)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런 게임에 반대한다고 해서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역정서 때문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현재 자율적 통합이 추진되고 있는 청주-청원, 마산-창원, 여수-순천-광양 등의 지역에서조차도 주민들 간 갈등의 수위가 만만하지 않다. 중앙정부에 의해 반강제적인 방법으로 시·군 통합이 추진된다면 통합시를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방행정체제 개편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작다. 1995년 이래 전국적으로 40개 지역에서 이루어진 시·군 통합의 성과를 알기 어렵듯이. 반면 개편과정에서 분출되는 갈등은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념적·지역적 갈등으로 사회적 통합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MB 정권에서 새로운 갈등을 불러올 정책을 추진할 여유가 있는 것일까?
김석태(경북대학교 행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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