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당당하게 먹자

입력 2009-07-06 10:48:59

'개고기 음식' 유럽서도 역사 깊어'전통 보양식' 위생개선'전승 필요

한 주일만 더 지나면 初伏(초복). 복 더위 앞에 지쳐 있는 서민들에겐 惡法(악법) 시비로 세월 보내는 국회가 손에 든 종이부채 하나만도 못한 존재다. '정치인은 기저귀와 같아서 자주 갈아 줘야 깨끗해진다'고 어느 정치 영화에서 풍자했지만 요즘 우리 국회는 새 기저귀로 갈아 채우려 해도 2년을 더 기다려야 되니 민생 입법 타결 소식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복더위를 犬公(견공) 얘기나 하며 넘기는 게 더 시원할 것 같다.

지금 여야가 악법, 악법 하며 싸우지만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법의 하나로 치부되는 것은 개에 관한 법령이었다. 일본 5대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공표한 生類憐愍令(생류연민령)이 그것이다. 초기 법 취지는 중병에 걸린 개를 죽기 전에 내다 버려서는 안 된다는 동물 애호 정신이었으나 점차 개를 비롯해 조류, 물고기, 뱀, 쥐까지 때리거나 상처 입히고 내버리지 못하게 했다. 이후 조개'새우 요리까지 금지시켰고 법 시행 8년 뒤엔 나가노 들판 16만 평에 수십만 채의 개집을 지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가 6대 쇼군 때 와서야 법을 폐지하는 소동을 겪었다.

해괴한 악법 바람에 수십 년 동안 개 팔자가 상팔자였던 일본 개들도 막부시대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보신탕 신세가 되면서 팔자 사나운 개가 돼 버렸다. 대신 세계서 가장 팔자 좋은 개는 몽골 견공들 몫이 됐다. 몽골은 강아지도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고 한다. 새끼를 얻으려면 반드시 주인에게 돈 대신 비단 한 자락이라도 예를 갖춰 인사한 뒤에 얻을 수 있다. 얻은 강아지도 바로 자기 집으로 가져오지 못한다. 吉日(길일)을 기다렸다가 데리고 온다. 첫 음식은 우유를 주고 귀와 꼬리 부분에 비싼 최상품 버터를 발라주며 개 이름도 사람과 똑같이 좋은 의미가 담긴 이름을 붙여준다. 설날이나 명절에는 먹다 남은 음식이 아닌 따로 만든 별식을 주고 개 밥그릇 위로 타 넘어가거나 밟지 않는다.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잘라 머리맡에 베개처럼 받쳐 주어 다음 세상에는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한다.

그러다 보니 보신탕은 언감생심이다. 동물 애호가들의 입김이 센 유럽 쪽에도 사실은 보신탕의 역사는 동양만큼 뿌리 깊다. 고대 로마나 페루, 폴리네시아, 뉴질랜드 마오리족, 캐나다, 알래스카 원주민도 보신탕을 즐겼다. 보신탕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도 230여 년 전 보불전쟁 무렵 개 정육점, 고양이 정육점, 큰 쥐 정육점까지 있었고 개 전문 市場(시장)까지 번성한 기록이 있다. 프랑스 식민지 영토인 폴리네시아의 토종 누렁이는 국경일 때 절반 이상이 꼬치구이로 사라질 정도로 애용되고 있다. 독일도 한때 보신탕이 유행해 당국이 통제해야 했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우리 경우 신라 때는 일본과 당나라에 개를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조 때에도 궁중 수라상은 물론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칫상에 狗蒸(구증=개고기 찜)이 오르기도 했다. 심지어 개고기를 즐기는 좌의정에게 개를 뇌물로 바치고 벼슬을 얻었다는 기록도 있다. 보신탕을 주로 복 더위 때 먹는 것은 더운 성질을 가진 개고기는 火(화)에, 庚日(경일=복날)은 金(금)에 해당하므로 오행설에 따라 복날에 보신탕을 먹는 것이 더위를 이겨내기 좋다는 해석 때문이다.

개에 관한 어느 연구 논문에 의하면 개의 행동을 나타내는 한자는 64가지, 개에 관한 속담은 92가지나 된다고 한다. 개를 응용한 욕설도 각 지방마다 모아본 결과 15가지 정도, 개에 관한 說話(설화) 역시 74가지나 된다고 한다.(한국정신문화원) 그만큼 개가 음식뿐 아니라 인간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했다는 얘기다.

과거 올림픽 같은 세계적 행사가 있을 때 유독 개고기 먹는 아시아권 국가들이 개최국이 되면 미개인인 양 딴죽 걸었던 서구 문화권 사람들도 저네들 역사 속의 보신탕 문화를 안다면 이제는 제3세계 국가의 고유 식문화도 존중할 때도 됐다. 88올림픽 때 사철탕이란 별칭까지 만들어가며 뒷골목으로 밀려나 눈치껏 먹었던 우리 보신탕도 위생적 유통 관리 등을 개선해 가며 더 당당하게 전통 보양식으로 연구 전승해 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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